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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7

해가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할 수 있게 지원한 스페인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그의 자녀들을 유럽 여러 왕가에 결혼시켜 유럽 왕실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게됩니다. 이렇게 결혼 관계로 협정을 맺어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죽자 손자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탄생해요. (1516) 카를로스 1세 외할아버지에겐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을 외할머니에겐 카스타야 왕국과 신대륙을, 친할아버지에게서는 오스트리아를, 친할머니에겐 네덜란드의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아'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카를로스 1세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팽창정책을 선택했어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가 죽은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자리에 앉았고 신성로마제국에서..

흑사병과 유대인

14세기 유럽은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흑사병은 크림 반도 남부에서 발원했어요. 그리고는 이탈리아 상선대에 의해 무역로를 따라 이탈리아에 창궐했습니다. 그리고 1347년에는 프랑스 전역으로 그 다음해는 영국과 북유럽, 러시아까지 흑사병의 맹공격은 이어졌습니다. 전염병은 유럽전역에 타격을 가했고 4년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도시에 경우에는 그 피해가 상다했어요. 인구의 반을 잃기도 했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8년에 한번 꼴로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유럽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갔어요. 당시로서는 병을 치료할 수단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당연히 영양 상태가 좋지 안하았습니다. 그러니 병에 대..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과 콜럼버스의 항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세력이 약해진 이슬람 세력은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버텨보았지만 1492년 그라나다에서 항복하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퇴각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가톨릭 수호라는 명목으로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뤄냈죠. 이것을 레콘키스타이라 부르고 '재정복'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벨 여왕은 평화로운 레콘키스타를 이뤄냈는데요, 이슬람교도의 종교와 재산권, 상권을 유지해 주겠다는 이사벨의 조건을 받아들인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무함마드 12세가 저항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사벨 여왕은 궁전과 거대한 도서관을 그대로 사용했는데요, 이때부터 이슬람에 비해 과학이나 학문에서 뒤처져 있던 유럽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카노사의 굴욕

11세기 들어 교황의 권위는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고 정치적 권력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당시 대단했던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재임하자마자 교회 개혁과 쇄신 운동을 펼쳤어요. 그레고리 7세는 당시 왕이 가지고 있던 성직자 임명권을 교회로 가져오려 하였습니다. 이때 독일 왕 하인리히 4세는 반발했고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파문했을 뿐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귀족, 사제도 모두 파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어요. 하인리히 4세는 계속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많은 귀족들이 등을 돌렸고 심지어는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자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카노..

지금까지 해온 공부는 모두 잊어라 - 진짜공부

지금까지 최소 12년간 입시 위주의 공부를 주입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인생을 성장시키지도 못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인생의 주체로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성장을 향해 숨 가쁘게 돌아갔던 시대에는 읽고 쓰고 외우는 기초적인 공부면 충분했고 그것을 성실하게 하면 어느 정도의 삶이 보장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장에 초점을 맞췄을 때 모두가 동의했던 정답이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새로운 정답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건이 더 이상 욕구 충족의 대상이 되지 못할 때, 사회의 욕구는 어디로 나아갈까요? 더 이상 물건으로 채울 수 없게 된 만족감을 우리는 다른 곳에서 찾게 될 것이고 그것은 '..

책서평 2021.09.26

혼돈의 초현실주의 화가 -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괴짜, 광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라고 고백하며 천재임을 스스로 자처했던 그는, 비단 그의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그 존재 자체가 초현실 안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현실이라는 키워드로 퍼스널 브랜딩을 한 달리는, 초현실과 현실을 적절하게 넘나들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화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란 정신분석학자였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20세기 문학과 예술 사조를 말합니다. 종교가 지배적이었던 중세를 지나 인간 중심의 사상, 이성에 최고 권위를 주었던..

그림이야기 2021.09.25

르네상스, 고대 보물 중세와 만나 꽃 피우다

르네상스는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예 부흥이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다시 찾아보고 다시 수용하려 한 것으로,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고대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었죠. 제일 먼저 주목 받는 것은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로마 그 이전의 문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찬란했던 로마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고대 그리스 문화였죠. 르네상스는 신이라는 존재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이었습니다. 이는 예술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로써 암흑의 중세가 끝나고 근대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고대의 ..

중세 은행의 출현

10세기 말부터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동방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동방무역을 레반트 무역이라고 부른데, 레반트란 이탈리아어로 태양이 뜨는 지방인 동방, 즉 소아시아를 말합니다. 이탈리아는 동방과 유럽의 교통의 요지였기 대문에 그 지역의 무역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죠. 사실 원래 동방무역은 고대 해상무역의 중심이었던 페니키아의 유대인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 전반에 쇠퇴했다가 10세기부터 다시 활발해 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동방 무역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유대인들과 이슬람 세계의 유대인들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유대인이기 때문이죠.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유대인 중세 시대, 교황은 이슬람권과의 무역을 금지했..

중세 경제사 속의 유대인

중세 가톨릭 신자는 대부분 문맹이었습니다. 상류층 가운데도 일부만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일부 신도들은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전파했고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이러한 이단을 막기 위해 일반 신도들은 성경을 읽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금지하게 됩니다. (툴루즈 회의, 1229) 이러한 상태는 약 500년간 지속되었고, 사제가 미사를 행할 때도 라틴어로 집전하여 평신도들은 성경을 알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중세의 성화들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고, 성당마다 성화가 그러한 목적을 위해 성화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유대교는 성경을 읽기 위해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쳤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단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문맹을 권..

중세의 경제 - 길드, 유대인 대부업

중세 초기에는 농민만 유일한 생산 계급으로 인식되었고 상업이나 수공업은 천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했습니다. 그중 유대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자연히 상업, 수공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한 유대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돈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까요. 유대인에게는 상업에 대한 남다른 센스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공부하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읽기, 쓰기, 계산은 분석하는 능력을 뛰어나게 했고 그들의 신앙관에 따라 약속을 목숨같이 지키는 그들의 태도는 타인에게 신뢰를 살만 했습니다. 역사상 늘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던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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