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

혼돈의 초현실주의 화가 - 살바도르 달리

뽀선생Kimppo 2021. 9. 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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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괴짜, 광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라고 고백하며 천재임을 스스로 자처했던 그는, 비단 그의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삶 자체가, 그 존재 자체가 초현실 안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현실이라는 키워드로 퍼스널 브랜딩을 한 달리는, 초현실과 현실을 적절하게 넘나들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화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살바도르 달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란 정신분석학자였던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20세기 문학과 예술 사조를 말합니다. 종교가 지배적이었던 중세를 지나 인간 중심의 사상, 이성에 최고 권위를 주었던 인류는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를 보고 참담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던 인간의 이성은 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아 보였죠.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람들은 전통과 질서를 파괴하고자 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비합리와 비윤리적인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이 시작됩니다. 즉, 믿어왔던 것들의 대한 배신은 인류를 고민에 빠지게 했고 인류는 사춘기 시기를 맞은 것처럼 모든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가기 원했어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영역에 주목했고, 그것이 이성의 반대, 합리적인 생각을 벗어난 세상이라고 믿었죠. “인간의 내면은 결코 이성이라는 한 가지 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초 - 살바도르 달리의 시대

이렇게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 온 세상이 떠들석하던 시대에 달리는 태어나고 자라나고 살아갔습니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재능을 보였던 달리는, 17세가 되던 해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하는데, 피카소가 졸업한 명문학교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도 반정부 활동으로 감옥에 가기도 하는 등, 불안정한 학교 생활을 하다가 결국 퇴학을 당합니다.

20세기 초 달리는 파리를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피카소를 만나죠. 스페인 출신의 두 거장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미 대가였던 피카소와 한창 열정에 가득했던 달리는 서로의 천재성을 알아보았지만 완벽하게 다른 세계관을 가졌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20세기 초, 이념이나 종교, 인종의 차이를 명분으로한 수많은 전쟁이 발발했으며 화가의 모국에서도 내전이 발발합니다. 스페인 내전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무력으로 충돌했으며, 그것은 한 나라를 무참하게 짓밟기 충분했습니다. 1936년 7월에 시작된 전쟁은, 스페인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맞서 반란이 일어났고 그들은 변화하기 이전의 스페인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했죠. 쿠데타는 3년간이나 지속되었고 이는 유럽 전체에서 파시즘과 민주주의 간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 내전에 달리는 줄행랑을 쳤고, 조지 오엘은 참전했고, 피카소는 반대하는 군부 독재 체제가 승리하자 스페인을 떠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통해 스페인 내전의 참담함을 담았고 헤밍웨이는 종군 기자로서 스페인에서 자행되는 야만적인 상황을 전 세계에 고발하고, 이 내전을 배경으로 훗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예술가들은 물론, 많은 지성인들이 소신을 가지고 옳다 생각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창작물에 녹여냈습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달리는,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소신을 바꿨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자본주의, 파시즘의 망령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여 초현실주의자 화가 그룹에서도 제명당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비난 받기 충분했죠. 하지만 그의 발언은 진지한 것인지 찬양을 통한 비아냥인지 종종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실상 초현실주의의 본질은 부정하고 파괴하고 뛰어넘는 것이니 어쩌면 달리가 진정한 초현실주의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그러나 스페인의 독재자이며 파시스트였던 프란시스코 프란코를 공개 지지하면서 피카소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을 갑니다. 참고로 피카소는 [게르니카]와 [한국전쟁]이라는 작품을 통해 미군을 비난하였고 실제 공산당에 가입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달리의 작품

그의 대표적인 작품 [기억의 지속]은 녹아내리는 시계, 늘어진 시계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부드러움과 견고함의 조화를 이용해 현실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시간도 초현실에서는 녹아내리는 치즈와 같이 무의미 함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당시에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시간에 왜곡을 묘사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를 부정하며 흘러내리는 까망베르 치즈에 영감을 받았노라고 재치 있는 답변을 합니다.

살바토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프로이트에 깊은 영향을 받은 달리는, 실제 프로이트를 만나게 되자 이 그림을 보여줬지만 프로이트는 그의 그림은 완벽히 계산적이고 이성적이라고 평가를 합니다. 어쩌면 프로이트의 평가가 정확할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달리는 초현실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에 능숙했고, 현실로 가지고 오지 못하는 초현실의 존재는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달루시아의 개


1929년 스페인의 루이스 부뉴엘이 감독하고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작업한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당시 첫 장면부터 안구를 면도칼로 긋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며 연속된 기괴한 장면의 묘사로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준 작품입니다. 당시 합리주의, 문명화에 대한 경멸과 거부를 표현한 아방가르드 영화들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제목에 대한 의문도 상당했는데요, 대학시절 삼총사였던 달리, 부뉴엘, 시인로르카 중 로르카가 안달루시아 출신인데 그를 비웃기 위해 그렇게 지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어진 영화였기 때문에 제작자는 물론 관객들에게 수많은 항의를 받았고 감독은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의 출연한 주연 배우 두 명은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해 더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혹평을 면하지 못했던 작품이지만, 이후의 영화에 큰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달리의 뮤즈 갈라


달리의 뮤즈 갈라

달리와 갈라가 처음 만났을 때, 갈라는 프랑스 시인 폴 엘리아르의 아내였습니다. 달리는 열정이 가득한 25세의 청년이었고 그녀는 원숙한 35세의 여인이었습니다. 달리는 그녀에게 열정적으로 구해했고 결국 파이에서 달리의 개인전이 열리던 도중 동반 도주하여 잠적했습니다. 이후 1934년 갈라는 폴 엘뤼아르와 이혼하고 정식으로 달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갈라는 달리의 뮤즈로써 여러 작품에 여러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그녀는 매니저의 역할에도 충실했습니다. 달리는 갈라를 매우 사랑했고 그의 작품은 그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76세가 된 달리는 중풍으로 붓을 잡을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심신은 더욱 쇠약해져만 갔습니다. 그사이 갈라의 불륜이 지속되며 달리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고 갈라를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트리고 흥분한 갈라는 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약물의 영향으로 달리는 더욱 정신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갈라가 먼저 눈을 감자, 달리는 삶에 대한 의지마저 잃게 되었고, 7년 후 자신이 태어난 집과 불과 세 블록 떨어진 거리의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시신은 자신의 미술관인 피게라스 극장 미술관에 안치되었습니다.


광기로 표현되었던 그의 삶을 살펴보며, 어쩌면 광기가 아니고서 살아낼 수 없었던 그 시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념을 명분으로 일어난 수많은 전쟁과 폐허가 된 조국, 과격한 압제, 좁혀지지 않는 양극단의 싸움은 많은 예술가들을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갔고 다시 다른 극단으로 치닫게 하였습니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몇 안 되는 화가였던 달리는 자신을 초현실주의자로 잘 브랜딩 했고 그것은 시대와 맞아떨어져 예술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성적이며 계산적인 그의 작품은 초현실을 현실에서 구현하려 애쓴 그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누구도 시대를 거스르며 살 수 없듯이, 살바도르 달리 역시 온 몸으로 시대의 바람에 맞섰으며, 어머니와 같은 여인인 갈라를 작은 안식처 삼아 버텨왔던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인 것이 매일 아침 기쁘다는 그의 자기애 충만한 말과는 상반된, 화려하게 포장된 그의 삶과는 상반된, 시대 속에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던 살바도르 달리였습니다.


알고가면 더 재미있는 살바도르 전시가 11월 27일 개장합니다. 얼리버드 티켓을 50% 가격에 만나 볼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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