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흑사병과 유대인

뽀선생Kimppo 2021. 9. 2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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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유럽은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흑사병은 크림 반도 남부에서 발원했어요. 그리고는 이탈리아 상선대에 의해 무역로를 따라 이탈리아에 창궐했습니다. 그리고 1347년에는 프랑스 전역으로 그 다음해는 영국과 북유럽, 러시아까지 흑사병의 맹공격은 이어졌습니다.

전염병은 유럽전역에 타격을 가했고 4년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도시에 경우에는 그 피해가 상다했어요. 인구의 반을 잃기도 했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8년에 한번 꼴로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유럽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갔어요.

당시로서는 병을 치료할 수단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당연히 영양 상태가 좋지 안하았습니다. 그러니 병에 대한 면역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흑사병은 감염되면 고열에 시달리고 피를 토하며 호흡곤란을 일으킵니다. 보통 발병한 지 24시간 내에 사망하는 사망 직전에 환자의 피부가 검은 색으로 변하여 흑사병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염병에 시달리던 때에도 무엇이 병의 원인인지는 몰랐죠. 페스트 균이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이었습니다.  


전염병 시대의 유대인

이렇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자 노동력은 부족해 졌고 그것은 극심한 경기 침체로 이어졌어요. 유럽의 경제는 거의 파멸의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렇게 파괴된 경제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유럽의 경우 16세기에 들어서야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전염병의 원인은 몽골의 전사들이 광범위한 지역을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하면서 병이 세계 각지로 확산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사람과 가축들의 이동은 전염병을 함께 이동하게 한 것이죠. 실제로 중국에서도 흑사병은 무섭게 퍼져갔고 몽골제국에도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성적인 분석 보다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인간의 죄에 분노한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죠. 죽음의 공포가 사회를 뒤덮자 사회는 광기와 미신에 열광했습니다. 그들은 평소 경제를 쥐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눈길을 돌렸습니다. 흑사병의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공교롭게도 유대인들은 흑사병에 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이유는 그들의 율법에 근거하여 청결한 것을 생활화 했기 때문이었는데 말이죠. 그때 이미 그들은 손을 씻는 것을 정결의식으로 여겼습니다.

스페인의 유대인

흑사병이 한창 극성을 부리던 시기 아라곤 왕국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스페인에서 대대적인 유대인 학살로 이어졌고 유대교는 금지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개종을 하거나 스페인 땅을 떠나야 하는 선택을 해야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고 이렇게 개종을 한 유대인들을 ‘콘베르소’ 혹은 ‘마라노’라고 불렀습니다. 마라노는 돼지무리,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경멸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이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경멸하며 부를 때 돼지를 비유하여 부르곤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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