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바이외 태피스트리 헤이스팅 전투

뽀선생Kimppo 2021. 10. 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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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만 70미터에 육박하는 자수 작품을 아시나요? 이 작품은 노르망디 윌리엄 공작과 웨섹스의 해럴드 백작의 왕위 쟁탈 전쟁인 헤이스팅 전투의 이야기를 수로 놓은 작품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라고 불리죠.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윌리엄의 이복동생인 오도 주교가 작품을 의뢰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작품 안에 오도 주교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등장하고, 오도 주교가 지은 바이외 성당에서 태피스트리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힘을 얻습니다.

태피스트리는 직물 공예로 색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 작품은 엄밀이 말하면 태피스트리라기 보다는 자수 작품으로 볼 수 있어 그 이름을 '켄터베리 자수'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헤이스팅 전투

1066년 잉글랜드 왕이었던 에드워드가 사망하기 전 후사가 없자 후계자로 웨섹스 출신 귀족 헤럴들를 선택합니다. 많은 대신들은 이것에 찬성했지만 윌리엄은 반대했어요. 윌리엄은 바이킹 왕국인 노르망디 출신으로 잉글랜드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사실상 왕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사람들은 노르만 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헤럴들을 지목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정대로 해럴드가 왕위에 오르고 대관식이 성대하게 치뤄졌습니다. 그리고 윌리엄은 헤럴드와 전투 준비를 했습니다. 윌리엄은 헤럴드 군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상륙해서 헤럴드의 군대는 먼 길을 올 수밖에 없었어요. 지친 상태에서 도착한 헤럴드의 군대는 훈련도 장비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헤럴드가 사망하자 잉글랜드 군은 와해되며 윌리엄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투인 '헤이스팅 전투'입니다. 잉글랜드는 또 다시 노르만 인들에게 정복되었기 때문에 '노르만 정복'이라 말합니다. 이 헤이스팅 전투에 승리한 윌리엄은 잉글랜드의 새 국왕이 되고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

이런 헤이스팅 전투를 상세하게 담은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에드워드 왕의 처남인 해롤드 백작이 프랑스로 떠나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해롤드가 프랑스로 가던 도중 배가 난파되어 그 지역에 붙잡혔다가 윌리엄의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그때 해롤드는 윌리엄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영국으로 돌아가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곧 윌리엄이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 남쪽에 도착, 윌리엄은 요새를 만들고 주님들을 약탈하여 잔치를 벌였죠. 그리고 헤이스팅 전투의 모습은 매우 상세하게 태피스트리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결국 윌리엄의 칼에 해롤드가 죽고, 패배한 잉글랜드 사람들은 그곳을 탈출하는 장면이 태피스트리의 마지막에 나옵니다.

잉글랜드 왕 해롤드가 윌리엄에 칼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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