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브뤼헤 항구의 번성 (feat. 중계무역)

뽀선생Kimppo 2021. 10. 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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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란 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입니다. 이렇게 상업을 중시했던 시대는 16세기부터 약 3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때 자본주의의 밑바탕이 마련되었습니다. 유럽은 상업을 이처럼 중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화폐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했습니다. 값싼 원료를 확보하고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던 것도 바로 이 때입니다.


브뤼헤 항구, 모직물 산업


1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자 반유대 정서가 고조 되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플랑드르로 탈주했어요. 3차 십자군 전쟁 때, 영국의 유대인들은 일시에 추방 당했습니다. 반유대 정서를 명분삼아 자신들의 빚을 무효화 하고자 유대인들을 한꺼번에 내쫓은것은 영국의 왕과 귀족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재산도 몰수했어요. 쫓겨난 유대인들은 플랑드르의 브뤼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이주한 유대인들과 새롭게 이주하게된 유대인들은 모직물을 고급화 하는데 주력했고 이를 샹파뉴 정기시에 내다 팔았습니다.

이슬람 해군이 유럽 연합군에게 패배하자 지브롤터 해협이 열렸고 이는 무역을 북해까지 확대되게 하였죠. 베네치아와 브뤼헤는 정기적으로 교역을 했습니다. 이 때부터 지중해 국과들과 양모, 모직물을 교역했고 도시는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교역의 중심에는 유대인이 있었어요.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추방당한 유대인


15세기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추방당했는데 그 수는 30만명에 이릅니다. 이렇게 추방된 유대인들은 동족들이 살고 있는 브뤼헤와 앤트워프 지역으로 이주하고 일부는 이탈리아와 오스만제국을 택하기도 했죠. 이렇게 브뤼헤는 유럽 최고의 무역, 금융의 중심이 됩니다. 유대인을 추방한 도시들의 항구는 그 힘을 잃어갔어요.

유대인들은 중계무역을 선도했는데요, 상품을 수입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부가가치를 높혀 다시 수출하는 형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양모와 피혁, 천일염, 올리브, 플랑드르산 아마, 모직물, 프랑스산 포도주, 독일 맥주들을 중계무역 상품으로 취급했고 이러한 상품들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게 번성하던 브뤼헤 항구는 강의 수로가 침전물로 막히면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히면서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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