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회주의 인물, 용어 정리

뽀선생Kimppo 2021. 10. 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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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스탈린주의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선행됭어야 하는 용어를 정리해 보려합니다. 아래 내용은 사전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옳고 그름에 판단없이 사전적 용어 정리입니다. 

 

공산주의 : 사유 재산의 철패, 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에 기반을 둔 경제, 사회, 정치 공동체 형성에 관한 사상

 

사회주의 :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 경제와 모든 사람이 노동의 대가로 평등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다양한 사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

 

유물사관 :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역사관, 사회계급과 경제적 제약이 역사적 결과를 도출하는 중심이라 주장, 노동계급과 피억압민족의 역사를 기술하는 데 주요한 기여를 했다.

 

유물론 : 물질을 1차적, 근본적인 실재로 생각, 마음이나 정신을 부차적, 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철학

변증법 :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원래 대화술, 문답법이라는 뜻, 변증법의 창시자 제논은 상대방의 입장에 어떤 자기모순이 있는가를 논증함으로써 자기 올바름을 입증하려 했다. 이 같은 문답법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전개, 플라톤에 의해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요시되었다.

 

레닌주의에 영원하라 - 포스터 / 사회주의 계보를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 : 마르크스는 자연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 변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인간 사회에 적용해서 인간의 역사 발전에 일반적 법칙을 설명하는 유물사관을 정립, 경제학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 보고 그는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필연적으로 멸망할 것을 증명하는데 반평생을 바쳤다. 그가 혁명을 믿고 주장하게 된 것은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닌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계급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곧 노동자 계급이야 말로 혁명의 유일한 주체세력이라고 믿었다. 마르크스 사후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에 의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나뉘어졌다.

 

레닌 : 마라크스, 엥겔스의 후계자로 러시아 공산당,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창설자이기도 하다. 사마라에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그룹을 조직했고 1093년 페테르부르크로 이주,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지도자 위치에 서게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선전했지만 1895년 체포되어 투옥되고 시베리아로 유형당한다. 1900년, 국외로 망명하여 국외에서 러시아에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신문 ‘이스크라’를 발행하여 새로운 형태의 마르크스주의 당과 그 강령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1차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사회주의 혁명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는 레닌의 지도하에 이루어졌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레닌을 지도자로 하여 탄생했다.

 

소비에트 연방

소비에트 연방 : 1971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제국을 멸망시켰고 러시아 임시 정부는 같은 해 일어난 10월 혁명으로 붕괴했다. 볼셰비키가 러시아 정권을 잡자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내전이 일어났지만 볼셰비키는 내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1922년 12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통합되어 소련이 탄생한다. 초대 지도자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이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다. 소련은 스탈린의 경제 정책과 강력한 정치 억압을 통해 거대한 규모의 산업화를 이루어 내었다. 

강철이라는 뜻의 스탈린


스탈린 : 레닌 시대의 2인자며 실권자였던 스탈린은 1924년부터 1953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최고 권력자였다. 조지아 출신으로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를 꿈꾸었지만 공산주의 혁명 사상에 매료된 그는 종교를 포기하고 공산주의 운동가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이었던 스탈린은 총리에 자리에 오르고 다시 재선 되기도 했다. 1941년 독일의 침공으로 독소 전쟁이 일어났고 초기 러시아의 약세로 모스크바까지 위협을 받았으나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를 기반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나치 독일군은 항복했다. 정치적으로 그는 정적을 철저하게 숙청했고 동지들도 반혁명 혐의로 숙청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해서 우상화되었지만 죽음 이후 독재자로 재평가되었다. 스탈린은 '만능의 천재', '빛나는 태양' , '삶의 지주', '위대한 조직자', '위대한 지도자'로 찬양을 받았고 러시아 정교회의 부주교로부터 공공연히 '우리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하지만 독재자로 재평가받게 되었을 때는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스탈린의 본명은 조지아어로 이오세브 베사리오니스 제 주가슈빌리이며 소소가 그의 애칭이었다. '스탈린'이라는 가명은 '강철'을 뜻하며, 신학교 시절 필명으로 쓰던 것이 굳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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