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중세 은행의 출현

뽀선생Kimppo 2021. 9. 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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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말부터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동방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동방무역을 레반트 무역이라고 부른데, 레반트란 이탈리아어로 태양이 뜨는 지방인 동방, 즉 소아시아를 말합니다. 이탈리아는 동방과 유럽의 교통의 요지였기 대문에 그 지역의 무역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죠. 사실 원래 동방무역은 고대 해상무역의 중심이었던 페니키아의 유대인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 전반에 쇠퇴했다가 10세기부터 다시 활발해 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동방 무역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유대인들과 이슬람 세계의 유대인들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유대인이기 때문이죠.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유대인

중세 시대, 교황은 이슬람권과의 무역을 금지했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어요. 이슬람 권에 출입이 자유로웠던 유대인은 그들의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교역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틈새시장을 이용한 유대인들은 막대한 부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11-12세기 상업혁명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자 해상 무역은 더 비대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무역이 발달하자 자연스럽게 자금을 뒷받침할 금융업도 발전해 갔어요. 

 

무역과 금융

기독교와 이슬람권 사이에서 무역을 독차지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유대인은 기독교에서 금지하고 있던 대부업을 발전 시켰습니다. 그것은 곧 금융 산업으로 이어졌어요. 상인들은 어음을 발행했고 이는 상인뿐만 아니라 왕족과 귀족에게도 퍼져나갔습니다. 이러한 상업 자본은 은행을 만들었어요. 이러한 무역금융은 해상 보험으로 발전합니다. 선박을 담보하여 대출을 받는 해상 보험은 위험을 분산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렇게 돈줄을 잡게 된 유대인은 자연스럽게 유럽의 왕실에 자금줄이 되었고, 이후 유럽을 발전하게 만든 것도 금융 산업의 덕이 크다할 수 있습니다. 상업을 통해 얻은 부는 금융의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부자 유럽을 만들었습니다. 

 

은행의 출현

중세시대는 큰 지역마다 정기적으로 시장이 열렸습니다. 시장에서 그 계절의 중요한 거래가 이루어지곤 했는데요, 11세기 이탈리아 시장에서는 긴 탁자(banko)를 놓고 환전을 하거나 어음과 신용장을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은행의 시작입니다. 중세의 환전상은 노련한 전문가로 도시마다 다른 금화와 은화의 가치를 분별할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정보가 필요했지요. 이러한 정보에는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정보를 교환하는 유대인에게 유리했습니다. 각국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은 각각의 지역에서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었죠. 이렇게 이탈리아의 은행가들은 환전 업무를 넘어서 어음과 예금도 시작했고, 예금자들은 돈을 맡기고 증서를 받아갔습니다. 

 

환전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중세 은행은 금을 보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보관수수료를 내고 돈을 맡기고 예치한 금의 무게를 적은 보관증서를 받아갔죠. 이렇게 받은 증서는 돈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무거운 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습니다. 이 증서가 어음의 시작입니다. 환전상들은 그들의 맡긴 금을 가지고 상인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 대부업을 하며 이익을 실현했습니다. 이때도 금을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증서를 만들어 주었어요. 

 

이렇게 이자로 수익을 본 환전상들은, 실제 가지고 있는 금보다 더 많은 증서를 발급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증서를 돈처럼 사용했고, 있지도 않는 금을 대출해 주고 그에 대한 이자도 꼬박꼬박 챙겨 받았습니다. 한꺼번에 맡긴 모든 금을 찾아갈 일도 없었기 때문에 걱정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행은 점점 더 많은 보관증서를 발급했고 더 많은 이득을 취했어요. 상인은 물론 귀족과 왕족들도 은행을 이용했고 이런 금융자본은 은행을 만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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