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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158

중세 은행의 출현

10세기 말부터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동방무역이 활발해졌습니다. 동방무역을 레반트 무역이라고 부른데, 레반트란 이탈리아어로 태양이 뜨는 지방인 동방, 즉 소아시아를 말합니다. 이탈리아는 동방과 유럽의 교통의 요지였기 대문에 그 지역의 무역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죠. 사실 원래 동방무역은 고대 해상무역의 중심이었던 페니키아의 유대인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 전반에 쇠퇴했다가 10세기부터 다시 활발해 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러한 동방 무역은 서구 기독교 세계의 유대인들과 이슬람 세계의 유대인들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와 이슬람이 적대 관계였기 때문에 그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 것이 유대인이기 때문이죠.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유대인 중세 시대, 교황은 이슬람권과의 무역을 금지했..

중세 경제사 속의 유대인

중세 가톨릭 신자는 대부분 문맹이었습니다. 상류층 가운데도 일부만 글을 읽을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일부 신도들은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전파했고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이러한 이단을 막기 위해 일반 신도들은 성경을 읽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금지하게 됩니다. (툴루즈 회의, 1229) 이러한 상태는 약 500년간 지속되었고, 사제가 미사를 행할 때도 라틴어로 집전하여 평신도들은 성경을 알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중세의 성화들은 글을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고, 성당마다 성화가 그러한 목적을 위해 성화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유대교는 성경을 읽기 위해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쳤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단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문맹을 권..

중세의 경제 - 길드, 유대인 대부업

중세 초기에는 농민만 유일한 생산 계급으로 인식되었고 상업이나 수공업은 천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했습니다. 그중 유대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자연히 상업, 수공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한 유대인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돈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까요. 유대인에게는 상업에 대한 남다른 센스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공부하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읽기, 쓰기, 계산은 분석하는 능력을 뛰어나게 했고 그들의 신앙관에 따라 약속을 목숨같이 지키는 그들의 태도는 타인에게 신뢰를 살만 했습니다. 역사상 늘 이리저리 치이며 살았던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

일본의 역사 - 야마토 시대, 아스카 문화, 다이카 개신, 나라시대

일본은 태평양에 위치한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본의 영토는 크고 길쭉한 모양을 가지고 있어서 북쪽 끝에는 늘 얼어붙어 있고 남쪽에는 산호초의 바닷가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처음 일본은 수많은 가문들이 일본을 나누어 지배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부터 야마토 가문의 힘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죠. 그들은 다른 가문들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일본 열도를 통일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일본 최초의 통일 왕조인 야마토 왕조는 현재까지고 왕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스카 문화 스이코 천황 재위 기간에 정점을 이룬 야마토국 중심의 불교문화를 뜻합니다. 시기적으로는 불교가 들어간 때부터 다이카 개신까지를 말하며 한반도와 중국 남북조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

세계사 2021.09.20

당나라 - 태종 이세민

중국 수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이연은 상황을 수습하고 피지배 민족이었던 한족들을 굴복시키며 장안에서 당나라를 개국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를 중국의 역사로 보고 있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선비족의 정복왕조로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당나라 선비족들이 한족과 중국을 정복해 세워진 국가였기 때문이죠. 당나라의 건국 당시 북방에는 돌궐이 있었고 중국을 정복하는데 돌궐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돌궐족의 합세로 장안까지 쳐들어간 이연은 수나라의 수도 공격에 성공했고 당나라를 건국하게 된 것이죠. 현무문의 변 원래 이연의 가문은 수나라 시절에 북방을 다스리는 꽤나 명망 높은 집안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노자의 후손이라 자칭하였습니다. 이연은 626년까지 당나라를 통치하지만 그의 아들인 이세민에게 강제로 왕위를 ..

중국의 남북조시대 - 수나라의 건국과 멸망, 대운하 건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중국의 남북조 시대는 386-589년의 시기로 중원으로 이주한 유목민의 북조와 한족의 남조가 대립하다가 우문태가 건국한 선비족 왕조 북주가 마지막 한족 국가까지 정복하면서 통일한 시기와 수나라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때를 삼국시대의 오나라와 동진을 합쳐 육조 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강남이 개발되어 발전하였기 때문에 이후에 수나라나 당나라 시대에 강남은 중국의 경제 기반이 되기도 합니다. 남조는 문화가 발달하고 불교가 융성하여 육조 문화라 불리는 귀족 문화가 발전하였고 화북에서는 탁발부가 건국한 북위가 오호십육국시대를 정리하고, 황제가 통치하는 중앙집권제 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수나라 수나라는 중국의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을 재통일한 나라입니다. 양견은 580년..

세계사 2021.09.18

신은 오직 하나뿐! 유대민족 이야기

인류 최초의 농경 사회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평원 수메르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신석기 혁명이라 부릅니다. 신석기혁명은 채집 생활에서 생산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수메르인들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줄기를 따라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농사 짓기는 좋았지만 금속이나 석재등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만들어 써야 했기 때문에 불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했고 자연스럽게 주변과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하천을 통해 물건을 실어나르다보니 자연스럽게 배 만드는 기술도 발전해 갔습니다.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물품들이 메소포타미아의 운하를 통해 거래되면서 큰 도시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인 우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

세계사 2021.09.17

이슬람의 시작 - 마호메트 (무함마드), 꾸란

아라비아 반도는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환경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도라는 이름처럼 바다에 둘러 쌓여 있지만, 실제로 반도 내에는 모래땅입니다. 이한 척박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상인으로 살았고 약탈자들로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은 부족 중심의 사회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했고, 사람들은 부족의 보호 아래 살고있어어요. 베두인 아랍어로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원어에서 유래된 베두인들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특히, 사막의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인들을 의미합니다. 아라비아 반도는 꽤 오랜 기간 씨족 사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환경적 요인으로 그들은 하나로 뭉치기 어려워 꽤 오랜 기간 씨족 사화를 유지해 왔으나, 이슬람교가 탄생하면서 마침내 하..

세계사 2021.09.16

굽타 제국 - 찬드라굽타 사무드라굽타 아잔타석굴

인도 역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굽타왕조 시대는 정치적으로 엄격한 절대 왕정의 시대였습니다. 마가다 일대에서 시작되어 인도 북부를 통일했던 왕조로서 인도의 문화를 크게 발전시킨 왕조입니다. 평화롭고 풍요로웠으며 예술가들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던 시대, 학자들은 수학과 과학, 천문학에서 큰 발전을 이룩한 시대, 이번 시간에는 굽타 제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굽타 왕조 3세기 중반 사산 제국이 인더스 강으로 진출하자 쿠샨 제국이 쇠퇴하게 되고 인도 아대륙에서 신흥 중소국들이 난립하게 됩니다. 그때 마가다 지역을 시작으로 형성된 굽타 왕국은 점점 세력을 키워가며 제국의 규모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찬드라굽타 1세는 결혼과 동시에 막강한 세력과 지원들을 얻어낼 수 있었고 이러한 힘으로 주변국들을 정복할 수..

세계사 2021.09.15

비잔틴 제국 1 콘스탄니누스, 유스티니아누스, 니카반란

이민족의 로마제국 침략이 잦아지자 유스타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를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고, 정제와 부제를 세워 사두정치체제를 시작합니다. 제국의 동족은 자신이 정제로 갈레리우스를 부제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첫번째 정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밀리아누스가 퇴위하자 사두체제는 무너졌고,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1세는 황제 세습 원칙을 세우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옛 그리스의 비잔티움을 두 번째 로마로 삼고 수도를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따 이 도시의 이름을 짓는데, 그것이 바로 콘스탄티노플입니다. (330년) 지금의 이스탄불 입니다. 콘스탄티누스 1세 (AD 307년–AD 326년) 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는 로마 장군 출신으로 갈리아를 포함한 주변지역의 부황제까지 된 인물입니다. 아버지..

세계사 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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