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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158

브뤼헤 항구의 번성 (feat. 중계무역)

중상주의란 상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입니다. 이렇게 상업을 중시했던 시대는 16세기부터 약 3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때 자본주의의 밑바탕이 마련되었습니다. 유럽은 상업을 이처럼 중시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화폐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했습니다. 값싼 원료를 확보하고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던 것도 바로 이 때입니다. 브뤼헤 항구, 모직물 산업 1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자 반유대 정서가 고조 되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플랑드르로 탈주했어요. 3차 십자군 전쟁 때, 영국의 유대인들은 일시에 추방 당했습니다. 반유대 정서를 명분삼아 자신들의 빚을 무효화 하고자 유대인들을 한꺼번에 내쫓은것은 영국의 왕과 귀족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재산도 몰수했어요. ..

바이외 태피스트리 헤이스팅 전투

길이만 70미터에 육박하는 자수 작품을 아시나요? 이 작품은 노르망디 윌리엄 공작과 웨섹스의 해럴드 백작의 왕위 쟁탈 전쟁인 헤이스팅 전투의 이야기를 수로 놓은 작품입니다. 바이외 태피스트리라고 불리죠.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윌리엄의 이복동생인 오도 주교가 작품을 의뢰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작품 안에 오도 주교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등장하고, 오도 주교가 지은 바이외 성당에서 태피스트리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힘을 얻습니다. 태피스트리는 직물 공예로 색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 작품은 엄밀이 말하면 태피스트리라기 보다는 자수 작품으로 볼 수 있어 그 이름을 '켄터베리 자수'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헤이스팅 전투 1066년 잉글랜드 왕이었던 에드워드가 ..

바이킹 시대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유럽 전지역에 걸친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것은 마치 옛 로마가 다시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침략자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북쪽 사람들이라는 뜻의 '노르만 인'들이었습니다. 프랑크 왕국 위쪽의 북해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나라가 있습니다. 노르만 인들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온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경작할 땅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자 새로운 땅을 찾아 항해하기 위해 배를 만들고 모험을 떠났습니다. '바다를 건너 모험을 떠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언어로 '바이킹'이었던 것이죠. 바이킹 시대 793-1066년 잉글랜드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인들이 교역과 약탈, 정복을 위해 바다와 강을 ..

세계사 2021.10.03

위대한 샤를 - 샤를마뉴

카롤루스 마그누스의 '마구누스'는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프랑스어인 '샤를마뉴'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죠. '위대한 샤를'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요? 위대하다는 수식어 붙게 된 샤를마뉴는 프랑크 왕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이탈리아를 정복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습니다. 샤를마뉴의 통치 샤를마뉴는 즉위 초부터 반란이 일어납니다. 아키텐에서 분리독립을 시도했고, 갈리아와 히스파니아에서 발생한 게르만족의 반란이 그것인데요, 이를 강력하게 진압하였습니다. 40년이라는 긴 통치 기간 동안 샤를마뉴는 사방을 점령합니다. 작센을 정벌하고, 분리독립을 완전하게 진압하여 복속시키는 한편, 북이탈리아 랑고바트르 왕국을 멸망시키고, 사라센을 토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의 원정에서는 참패를 맛보기..

세계사 2021.10.02

이슬람의 공격

중세의 강력했던 로마 제국이 쇠약해져 가면서 이슬람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종교로 더욱 강력한 연합을 보이며 학문과 학문에서도 발전된 문화를 보여줬던 이슬람이 어떻게 유럽 전역을 휩쓸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브롤터의 타리크 스페인 땅에 정착한 야만인은 고대 세계를 휩쓸고 다녔던 서고트 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왕국을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그들이 섬기던 왕이 죽자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죽은 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하자는 쪽과 세력이 강한 귀족을 후계자로 하자는 쪽이 맞섰죠. 죽은 왕의 아들들은 당연히 자기들의 물려받아야 하는 권력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북아프리카에 진을 치고 있던 타리크 이븐 지야드라는 유명한 장군에게 사신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엄청난 ..

세계사 2021.10.01

해가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할 수 있게 지원한 스페인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그의 자녀들을 유럽 여러 왕가에 결혼시켜 유럽 왕실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게됩니다. 이렇게 결혼 관계로 협정을 맺어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죽자 손자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이렇게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가 탄생해요. (1516) 카를로스 1세 외할아버지에겐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을 외할머니에겐 카스타야 왕국과 신대륙을, 친할아버지에게서는 오스트리아를, 친할머니에겐 네덜란드의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아'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카를로스 1세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팽창정책을 선택했어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가 죽은 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자리에 앉았고 신성로마제국에서..

흑사병과 유대인

14세기 유럽은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흑사병은 크림 반도 남부에서 발원했어요. 그리고는 이탈리아 상선대에 의해 무역로를 따라 이탈리아에 창궐했습니다. 그리고 1347년에는 프랑스 전역으로 그 다음해는 영국과 북유럽, 러시아까지 흑사병의 맹공격은 이어졌습니다. 전염병은 유럽전역에 타격을 가했고 4년간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특히 도시에 경우에는 그 피해가 상다했어요. 인구의 반을 잃기도 했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8년에 한번 꼴로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유럽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갔어요. 당시로서는 병을 치료할 수단을 찾지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졌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당연히 영양 상태가 좋지 안하았습니다. 그러니 병에 대..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과 콜럼버스의 항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세력이 약해진 이슬람 세력은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버텨보았지만 1492년 그라나다에서 항복하므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퇴각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가톨릭 수호라는 명목으로 이슬람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뤄냈죠. 이것을 레콘키스타이라 부르고 '재정복'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벨 여왕은 평화로운 레콘키스타를 이뤄냈는데요, 이슬람교도의 종교와 재산권, 상권을 유지해 주겠다는 이사벨의 조건을 받아들인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무함마드 12세가 저항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사벨 여왕은 궁전과 거대한 도서관을 그대로 사용했는데요, 이때부터 이슬람에 비해 과학이나 학문에서 뒤처져 있던 유럽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카노사의 굴욕

11세기 들어 교황의 권위는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고 정치적 권력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당시 대단했던 교황의 권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재임하자마자 교회 개혁과 쇄신 운동을 펼쳤어요. 그레고리 7세는 당시 왕이 가지고 있던 성직자 임명권을 교회로 가져오려 하였습니다. 이때 독일 왕 하인리히 4세는 반발했고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파문했을 뿐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귀족, 사제도 모두 파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어요. 하인리히 4세는 계속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많은 귀족들이 등을 돌렸고 심지어는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자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용서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카노..

르네상스, 고대 보물 중세와 만나 꽃 피우다

르네상스는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일어난 문예 부흥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예 부흥이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다시 찾아보고 다시 수용하려 한 것으로, 옛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사상, 예술을 본받아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정신을 되살리려 하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고대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었죠. 제일 먼저 주목 받는 것은 로마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로마 그 이전의 문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찬란했던 로마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고대 그리스 문화였죠. 르네상스는 신이라는 존재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열망이었습니다. 이는 예술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로써 암흑의 중세가 끝나고 근대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고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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