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바이킹 시대

뽀선생Kimppo 2021. 10. 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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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는 유럽 전지역에 걸친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는데, 그것은 마치 옛 로마가 다시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침략자가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북쪽 사람들이라는 뜻의 '노르만 인'들이었습니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이 있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프랑크 왕국 위쪽의 북해를 지나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의 나라가 있습니다. 노르만 인들은 바로 이곳에서부터 온 사람들이었죠. 그들은 경작할 땅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자 새로운 땅을 찾아 항해하기 위해 배를 만들고 모험을 떠났습니다. '바다를 건너 모험을 떠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언어로 '바이킹'이었던 것이죠. 

 

잉글랜드를 침략하는 것이 묘사된 항해 중인  노르드인 . 12세기

 

바이킹 시대 793-1066년

 

잉글랜드

북유럽과 스칸디나비아의 역사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인들이 교역과 약탈, 정복을 위해 바다와 강을 건너 유럽을 탐험 때입니다. 바이킹 개척가들은 잔혹한 약탈자의 모습을 보였는데요, 잉글랜드에서는 793년 잉글랜드의 한 섬에 있는 수도원을 파괴한 바이키 공격을 바이킹 시대의 시작으로 봅니다. 수도사들은 살해당했고, 바다에 던져지기도 했어요. 또, 교회의 보물들은 약탈당했고 노예로 끌려간 수도사 들도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잉글랜드 북부와 동부의 해안가에서는 산발적인 약탈이 계속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의 왕국들은 대부분 바이킹에 맞설 수 없었습니다. 867년 노섬브리아가 정복된 뒤, 870년 경 바이킹 지도자와 야를들이 이끄는 군데가 잉글랜드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잉글랜들의 대부분을 황폐화 시켰습니다. 그들은 요르비크(오늘날의 요크셔)를 근거지 삼았기 때문에 그곳이 바이킹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야를 : 야를 (jarl)은 게르만 철기 시대(기원후 375년경)로부터 중세까지 북유럽 일대에서 사용된 귀족 작위로, 영국 백작(earl)과 그 기원이 같습니다.

1003년 덴마크의 왕 스웨인은 잉글랜드를 수차례 침입했고, 1013년에는 마침내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는 이 시기에 덴마크 그리고 노르웨이 일부의 왕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1014년 스웨인이 죽자 웨식스의 철벽에 에드먼드가 왕으로 즉위했지만 다시 스웨인의 아들 크누트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말죠. 이렇게 잉글랜드에서 위세를 떨치던 바이킹의 세력은 1066년까지 서서히 감소했습니다. 

 

 

프랑스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은 노르만 인들이 침입한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바이킹들은 790년과 800년 사이 프랑스의 서부 연안을 따라 침입했지만 샤를마뉴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샤를마뉴의 시대가 가고 그의 세 손자들이 프랑크 왕국을 나누어서 통치하자 분열된 프랑크 왕국은 예전만하지는 못했어요. 바이킹의 침입은 점점 더 잦아져, 도시를 불태우고,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이것을 견디지 못한 프랑크 왕국의 왕은 땅의 일부를 바이킹에게 내어주었고 그곳을 바로 '노르망디'라고 부르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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