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노르망디 공작에서 잉글랜드의 왕이된 정복왕 윌리엄

뽀선생Kimppo 2021. 10. 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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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었던 윌리엄은 헤이스팅스 전투를 통해 잉글랜드 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 있지만, 바이킹의 침략에 성가셨던 프랑크 왕국이 아예 북쪽에 땅을 떼어 노르만 인 (북쪽 사람)에게 주어서 형성된 곳이 노르망디였죠.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점령하면서 잉글랜드의 왕조는 노르만 왕조가 되었습니다. 

사생아 윌리엄

노르망디 공작이었던 악마공 로베르 1세와 평민 출신 내연녀 사이에서 태어나, 사생아 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의 어머니는 출신이 미천했고 시대적으로도 사생아에 대해 호의롭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로베르 1세에게 다른 아들이 없었던 이유로 후계자로 삼게 됩니다. 윌리엄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게 되고 노르망디 공작이 됩니다. 하지만 사생아라는 꼬리표는 윌리엄을 계속해서 따라다닙니다. 

 

우악스러운 윌리엄의 청혼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플란데런의 공녀 마틸다와 결혼하려 했지만 그녀의 비웃음만 샀습니다. 사생아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난 윌리엄은 그녀를 찾아가 매질을 했다고 해요. 사생아 공작에게 자신의 딸이 매를 맞는 모습을 본 마틸다의 아버지 플란데런 백작은 윌리엄을 죽이려 했지만, 마틸다가 그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를 가로막았습니다. 당연히 마틸다의 아버지는 이 결혼을 반대했고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9세도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을 강행했고 결국 교황의 승인도 받아 내게 됩니다. 이로써 잉글랜드 왕이 될 명분을 갖추게 되죠.

 

 

행운의 윌리엄 - 헤이스팅스 전투

잉글랜드의 참회왕 에드워드는 후사가 없자 귀족들의 의회를 통해 해럴드 2세를 왕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공주와 결혼한 윌리엄에겐 혈통이라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난파한 해럴드를 구조하고 그에게 충성 맹세까지 받아 놓기도 했었죠. 용병도 모으고 함대도 건조하여 침공을 하려고 할 때 심한 북풍이 불어 배가 뜰 수 없던 윌리엄은 발이 묶이게되었습니다. 그 사이 노르웨이의 하랄 3세가 먼저 잉글랜드를 침공했습니다. 해럴드 2세는 그들을 막아냈어요. 이 전투로 인해 윌리엄에게는 최고의 경쟁자가 줄어들고 해럴드는 앞선 전투로 지쳐 버렸다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람은 윌리엄의 편이었고 잉글랜드에 도착한 윌리엄은 해럴드의 부대에 승리하게 됩니다. 결국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1세는 전사했고 윌리엄은 잉글랜드의 국왕이 됩니다.

 

국왕이 된 윌리엄

잉글랜드 왕이된 윌리엄은, 여전히 노르망디 공작의 신분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신하이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1세가 왕이 된 이후 런던은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앨프레드 왕이 데인 족을 격퇴한 후 중요한 도시로 키워졌고, 참회왕 에드워드가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건설하며 종교적으로도 중심이 되었던 런던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왕의 궁전은 윈체스터에 있었고 윌리엄 1세가 런던으로 개선할 때 공식적으로 정궁을 런던으로 옮기며 행정 수도로의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윌리엄은 토지 조사를 해 둠즈데이 북을 만드는데, 이 때문에 잉글랜드의 귀족 체계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토지를 몰수 당하고 노르만계 남작들은 토지를 하사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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