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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7

[현대 18]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오스트레일리아는 대영 제국의 일부였습니다. 그 시기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영국에서 버림받은 죄수들과 그들의 자녀가 살고 있었어요. 그곳의 죄수들은 영국 총독이 지배했는데, 간수들의 감시를 받으며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농사일을 터득했고 그곳에 정착해 가정을 이루며 살게 되었어요. 또 본국에서도 부자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 이주해 오기도 했죠. 골드 러시로 부강해진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라의 땅속에서 금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고 그것을 골드 러시라고 부릅니다. 골드 러시가 시작된 후 2년이 지나자 영국은 더이상 죄수를 그곳에 보내지 않았어요. 오스트레일리아가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강해지니 대영 제국은 그곳을 정식 식민지로 만들 생각..

[현대 17] 수에즈 운하

1805년 무하마드 알리라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장교가 이집트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의 이름으로 다스린다고 했지만 사실, 그 당시 제국의 힘이 너무 약해있는 상황이라 무하마드 알리는 아무런 통제 없이 마음대로 이집트를 다스렸어요. 그는 이집트를 서양처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집트의 현대화 무하마드 알리는 이집트를 유럽과 같이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유럽의 유명한 대학의 교수들을 초청해 가르치게 했고, 프랑스 군인들을 고용해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했습니다. 이집트는 날이 갈수록 부강해졌고 현대화되어갔습니다. 무하마드 알리가 죽자 그의 아들 사이드 파샤가 집권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사이드 파샤는 프랑스가 지중해 남쪽 해안과 홍해를 잇는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제의를 허락했습니다..

[현대 16] 태평양 전쟁

3국 동맹 전쟁(파라과이 전쟁)이 끝난 지 14년 후 남아메리카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전쟁은 볼리비아 남부와 칠레의 북부에 걸쳐 있는 아타카마 사막을 놓고 분쟁하며 시작되었는데요, 처음에는 별볼일 없는 건조한 사막이라 국경선도 없이 지냈지만 그 황량에 땅에 광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아타카마 사막 아타카마 사막은 높은 산이 비바람을 막기 때문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화학물질과 광물질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구리, 질산칼륨, 질산나트륨 등이었는데 화약을 만들거나 포탄, 비료를 만드는데도 사용되는 물질이었죠. 칠레의 광부들이 광물질을 캐기 위해 아타카마 사막에 들어가자 볼리비아는 그 광물을 캐려면 세금을..

돈키호테 - 인물 분석

돈키호테: 인간은 누구나 이상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모험을 찾아! 이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에 부조화를 느낀다. 두 세계는 좁혀질 수 없어 보이지만 돈키호테는 기사 소설이란 매개체를 이용해 이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기사의 이야기나 모험에 대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돈키호테는 누구 보다도 정상적인이며, 심지어 훌륭한 인품과 지성을 지닌 인물이다.즉, 그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혹은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는 그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이상적인 세계가 있다. 하지만 이상을 무시하고 현실만을 살기도하고,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가기도한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세상만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광인이라 부른..

책서평 2022.06.01

[현대 15] 오스만 투르크와 불가리아 독립 (4월 봉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소아시아 전 지역을 넘어 그리스 반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해 그 일부를 손에 넣고 싶어했죠. 그리고 그러한 일에 영국이 동맹이 되어주길 바랐어요. 게다가 오스만 투르크는 예전의 명성은 한물 간 상태로 점점 허약해져 가고 있었으니 러시아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더 커지는 것을 영국이 좋아할리 없었죠. 불가리아 '4월 봉기'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불가리아에서는 젊은 혁명가들이 독립을 주장하며 연설했습니다. 1876년에는 무장을 하고 반란을 일으켰어요. 이때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이었던 아브뒬라지즈는 투르크 군대를 불가리아로 보내 혁명가들을 몰살해 버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수십 개의 마을은 불에 타 없어져 버렸..

[현대 14]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

지금의 인도네시아 제도는 예전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상인들이 무역 회사를 만들고, 동양 여러 곳에 무역항을 건설했는데요, 곧 네덜란드 정부가 무역항들의 지배권을 인수받으며, 동인도 제도의 지역들을 장악했기 때문이에요. 수마트르를 욕심 낸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동인도 제도의 북쪽에 위치한 수마트라를 욕심냈어요. 영국은 싱가폴과 가까운 곳에 강력한 네덜란드가 있다는 것을 경계했죠. 그래서 1824년 조약을 맺는데, 수마트라를 네덜란드가 차지하는 대신 인도에 있는 모든 무역항을 영국에게 넘겨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마트라 섬의 위쪽 아체라는 곳은 독립국으로 인정해 주는 조건도 끼어 있었죠. 아체는 네덜라드 식민지 수마트라와 영국 식민지 싱가폴 사이에 중립 지대 같..

[현대 13] 메이지 유신

1854년 페리 제독은 강제적으로 일본의 항구를 열게 했고 이로인해 미국 상인들은 일본의 어려 항구를 통해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한 통상 조약에 많은 일본 사람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죠. 막부의 힘은 점점 약해지면서 다이묘들이 다시 들고 일어납니다. 메이지 유신 불평등 조약이 체결된지 12년 후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숨을 거두고 젊은 도쿠가와 유시노부가 그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그가 쇼군의 자리에 앉았을 때 쇼군의 힘은 예전같진 않았죠. 그는 해군을 강화하려했고, 일본 땅에 있는 외국인들을 쫓아 내려 했어요. 막부를 반대하는 다이묘(영주)들은 도쿠가와와 막부의 시대가 이제 끝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시노부는 안그래도 외국의 힘에 휘둘리는 일본에 내란까지 일어난다면 큰일이겠다 생각했죠..

[현대 13] 현대화를 이끈 철도와 시간대와 전구

1869년 5월 10일 프로몬토리 서미트에서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철도가 완공되었습니다. 7연 동안 2만 명의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였죠. 철도가 건설되자 한달 걸리던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가 단 5일로 단축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어요. 철도가 놓이자 사람들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철도와 시간이 가져다 준 현대화 우선 시간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정확한 기차 도착 시간을 승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캐나다 철도 기사 샌드포드 플레밍의 방법을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것은 세계를 북극에서 남극까지 일정한 선 24개를 긋고, 그 선이 만나는 지역은 같은 시간으로 맞추는 것이었죠. 그렇게하면 정확한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됩니다. 1883년 미국의 모든 도시들은 각 도시가..

[현대 12]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

1870년 독은이라는 나라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느슨한 연방을 유지하며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에만 선거를 통해 결정하고 각각의 주는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에 속해 있었죠. 비스마르크 1847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의회에 의원으로 선출 되었어요. 그는 프로이센이 주축이된 독일 연방을 꿈 꾸었어요. 1861년 빌헬름이 프로이센의 국왕이 되자 그는 비스마르크를 재상으로 임명했습니다. 프로이센은 피와 쇠로써 독일 연방을 통치할 것을 선언했고, 그 때문에 '철혈 재상'이라 불렸어요. 빌헬름은 곧 비스마르크에게 밀렸고, 사람들은 비스마르크의 통치를 '재상의 독재'라 말했습니다. 프로이센은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덴마크를 차지했고 이 전쟁 이후에 프로이센은 '북독일..

[현대 11] 프랑스 공화국, 제정국,

프랑스는 1789년까지 부르봉 왕조가 다스리던 군주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왕권은 신에게서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왕에게 속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서양의 사상은 유럽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사람들도 자기들을 대신할 지도자를 스스로 뽑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7월 혁명 그 길은 순탄하지 많은 않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고, 사회는 불안정했습니다. 그런 불안한 시기를 틈타 나타난 사람이 나폴레옹이었어요. 그는 스스로 왕관을 썼고, 처음으로 공화국이된 프랑스도 막을 내리게 되었죠.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고 프랑스 제국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폴레옹 이후 다시 부르봉 왕조에서 국왕이 나왔고 샤를 10세는 예전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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