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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207

영란은행

영국의 대외무역 팽창으로 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새로운 금융기관에 대한 요구가 커져갔습니다. 이렇게 영란은행이 탄생하게 되는데요, 이것 외에도 영란은행이 탄생한 배경이 더 있습니다. 1689년 영국 왕위를 계승받은 윌리엄은 재정적자 문제가 컸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난 것입니다. 영국은 세금을 올려서 그것을 충당해보려 했지만 그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1692년 국채 발행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재정혁명입니다. 국채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의회에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의회가 재정 운용권을 가지게 되자 국가채무에 대해 지급을 보장해 주기도 했습니다. 국채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것이죠. 그러나 국채를 발행해도 재정적자를 메꿀 수가 없자 윌리엄은 유대인 금융가들에..

청교도 혁명과 브레다 조약

크롬웰 시대에는 영국에서 실용주의가 대두되었고 이 때문에 유대인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습니다. 1290년 애드워드 1세에 의해 영국에서 추방당했던 유대인들은 간헐적으로 영국에 들어오다가 1500년경 성경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시선이 한층 더 부드러워지면서 런던, 브리스톨 등지에 유대인 거주지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청교도 혁명과 유대인 1559년 엘리자베스 1세가 내린 통일령을 따르지 않았던 청교도들은 칼뱅주의에 의한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청교도들은 엄격한 도덕룰, 신성한 주일 엄수, 향락에 제한을 주장했죠. 이러한 청교도들은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 때 박해를 받고 네덜란드로 피신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신대륙으로 떠나기도 했고요. 그 후 청교도는 영국 내에서 세력을 키워 정치적 영향력을 ..

영국의 해적질과 스페인 무력함대 격파

영국은 원래 상업을 천시하고 적을 공격해 당당하게 정복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어요. 상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상인은 도둑질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17세기까지 영국의 상선은 해적과 별로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요한 주산물의 무역조차 외국인들이 장악했는데, 이는 영국의 낙후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국가 차원에서 해적질을 일삼기도 했어요. 유대 상인과 영국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변방국에 불과했던 영국은 2백년 후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며 세계적인 통치자가 됩니다. 사실 영국은 양모와 모직물 말고는 특별한 산업이 없었어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북부에서 온 유대인 상인들이 영국의 양모 수출을 주도했는데,..

[세계역사 이야기 9] 인더스 강 유역, 모헨조다로

이집트 인들은 나일 강 주변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었어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것처럼요. 이처럼 강 주변에 산다는 것은 마실 물이나 농사에 필요한 물을 대는데 유용하지만 그 밖에도 다른 이유가 있답니다. 그것은 배를 이용해 무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강을 이용한 무역은 지역과 지역의 무역은 물론 나라와 나라의 무역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던 나라가 바로 인도입니다. 인도 사람들도 강을 길처럼 이용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인더스 강 주변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인더스 강은 그들에게 낚시터이기도 했고, 농경지에 물을 댈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배를 이용해 무역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아라비아..

카테고리 없음 2021.10.30

[세계역사 이야기 8] 아시리아 샴시아다드 왕

메소포타미아 남쪽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함무라비 때에, 메소포타미아 북쪽에서도 하나의 제국이 건설되어지고 있었답니다. 그 제국을 건설하고 있던 왕의 이름은 샴시아다드. 그는 법을 만들고 공정한 정치를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죠. 샴시아다드는 앗수르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샴시아다드 앗수르의 왕이된 그는 그곳을 새로운 제국의 중심이 되게 하고 싶었죠. 그래서 자신이 숭배하는 바람과 태풍의 신을 위해 거대한 사원을 건축했어요. 사원은 금과 은으로 씌운 마호가니 나무로 지어졌는데,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렇게 바람과 태풍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 바랐기 때문이죠. 그렇게 성전을 건축한 샴시아다드는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정복..

[세계역사 이야기 7]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왕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이 흐르는 곳으로 비옥한 땅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호시탐탐 그곳을 차지하고 싶어했죠. 그래서 잦은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어요. 외부의 침략도 많았지만 도시 국가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끊기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바빌로니아, 함무라비 법전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작은 땅이 었습니다. 그곳을 통치하는 왕은 함무라비였는데 그는 주변의 작은 도시들을 정복해 가며 그 힘을 키우기 시작했어요. 결국 메소포타미아 남쪽 전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그곳에 바벨로니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함무라비 왕이었지만, 힘으로만 다스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제국의 법을 만들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함무라비는 바빌론 최고의 신 마르둑이 자신을 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

[세계역사 이야기 6] 유대인 이야기

사르곤은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많은 도시들을 지배했는데 그중 하나가 우르였습니다. 성경의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에는 우르도 나온답니다. 옛날 아브람은 우르에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야훼는 아브람을 찾아왔고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떠날 것을 명령하셨어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 체 아브람은 조카 롯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어요. 그리고 아브람에게 이렇게 약속하세요. "내 말을 듣고, 순종하면 너를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할 거야. 가나안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줄거야. 네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꿀 것이다." 아브라함은 '많은 이들의 아버지'란 뜻이에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나이도 많고 자녀도 없었어요. 그런데 ..

[세계역사 이야기 5] 사르곤의 아카드 제국

메소포타미아에는 수메르 지역에는 수메르 인들이 살고 있었죠. 그런데 수메르는 하나의 나라는 아니었어요. 농사짓는 마을들이 모인 곳이었죠. 그런데 이 마을들이 점점 커지면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또, 왕을 세우고 군대도 생기기 시작했죠. 이런 형태를 도시 국가라고 부릅니다. 각 도시가 하나에 나라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르곤의 아카드 제국 이렇게 분열된 도시 국가들을 하나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사르곤입니다. 사르곤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아기였던 사르곤은 바구니에 담겨 유프라테스 강을 떠 내려왔다고 해요. 바구니는 키시라고 하는 도시의 갈대밭에 걸렸죠.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발견한 왕의 하인은 바구니를 키시의 왕에..

[세계역사 이야기 4]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나르메르 왕이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일한 뒤 이집트는 강력하고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를 이집트 고古 왕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고왕국시대에 처음으로 이집트 사람들은 미라를 만드는데요, 미라는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부패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향료와 소금을 이용해 처리한 뒤 린넨으로 감싸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세상에서 다시 산다고 믿었어요. 그럴 때 잘 보존된 시신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미라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미라를 만드는 과정은 아주 복잡했습니다. 일단 제사장만 미라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요, 만드는 과정도 2개월이 넘게 걸렸어요. 미라를 만드는 과정 제사장들은 소금, 향료, 린넨을 준비해놓고 시신이 사원으로 오면, 그 시신을 사원 안의..

[세계역사 이야기 3] 기록하는 사람들 - 상형문자와 설형문자

이집트 사람들은 기록하는데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문자는 그림 문자인데, 이렇게 그림을 사용한 문자를 상형문자라고 부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상형 문자를 돌판에 새겼어요. 돌판은 오랫동안 보관하기 좋았죠. 하지만 가지고 다니긴 너무 무거웠고 기록을 하는데도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진흙판에 글과 그림을 새겼습니다. 진흙판은 돌판보다 무언가를 새기긴 쉬웠습니다. 그들은 수메르라는 나라에 살았는데 그곳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지역이었어요. 이 지역을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렀고 그 뜻은 ' 두 강 사이에 있다'랍니다. 수메르 사람들에겐 이 두 강 사이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진흙은 얼마든지 있었죠. 그들은 진흙으로 일정한 모양의 판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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