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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158

[현대 06] 리소르지멘토 - 이탈리아의 부흥

지중해로 뻗어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는 바위가 많은 반도입니다. 1850년 이탈리아는 여러 자치 주들이 공존하고 있었어요. 아직 이탈리아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죠. 자치 주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의 '나라'를 설립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독립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었어요. 이탈리아의 비밀 단체들 자치 주들의 힘을 합쳐 '나라'를 세우기 위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저런 비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비밀 단체들은 어떤 형태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각각의 주장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1831년 '카르보나리'라는 비밀 단체는 여러 단체들을 연합해 오스트리아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오스트리아는 곧 반란군을 진압했고 주도한 사람들은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리소르지멘토 - 조세페 마치..

[현대 05] 그레이트 게임 - 아프가니스탄, 러시아, 영국

아프가니스탄은 러시아와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와 인접해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과 러시아는 그곳을 상대 나라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견제했어요. 영국과 러시아가 이렇게 아프가니스탄을 먼저 장악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대결을 벌였는데, 그것을 '그레이트 게임 Great Game'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와 영국의 전략 러시아는 페르시아와 연합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려 했습니다. 페르시아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로 진격했지만 영국의 제제로 인해서 무산되고 말았어요. 영국은 당시 아프간의 황제 도스트 무하마드에게 큰 돈을 빌려주려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 돈으로 군대를 일으켜 페르시아와 러시아 군과 싸우게 하려는 것이었죠. 그와 함께 도스트 무하마드를 영국의 채무자로 만들려는 것이었어요. 하지..

[현대 04] 크림 전쟁

크림 전쟁이 일어난 배경에는 러시아, 오스만 튀르크, 프랑스, 영국 등의 나라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러시아가 더 거대해지기를 바라지 않았고, 러시아는 지중해로 나갈 바닷길을 원했지요. 크림 전쟁의 배경 오스만 튀르크 제국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있는 팔레스타인, 콘스탄티노플 땅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세 도시가 기독교인들에게 너무 중요한 곳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스만 튀르크의 지도자는 영국, 프랑스 등의 나라에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성지들에 대한 관활권을 허락했습니다.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이 1세는 이스탄불을 공격해 그곳을 손에 넣기 원했어요. 러시아는 그곳을 손에 넣는다면 흑해를 지나 지중해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호시탐탐 이스탄불을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

[현대 03] 일본의 항구를 연 미국 - 매튜 페리 제독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 일본은 대를 이어받은 쇼군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쇼군들은 2백 년간 일본을 통치했는데요, 그들은 선교사들이 일본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군대가 쳐들어와 일본을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선교사들조차 일본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해외로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 서양의 책들은 일본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었죠. 일본의 문을 두두린 미국 - 매튜 페리 제독 서양의 사상서나 여러 기계들에 대한 책들을 읽게 된 일본 사람들은 이미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1853년 미국의 매튜 페리 제독은 무기를 잔뜩 실은 군함 네 척을 이끌고 일본의 에도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밀라드 필모어 대통령..

[현대 02] 인도와 영국, 세포이 항쟁

인도 자한기르 황제 때에 영국은 인도 해안 여러 곳에 교역소를 세우고 영국 상인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한기르는 그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동인도 회사가 세워졌죠. 영국은 점차 더 많은 곳에 교역소를 짓기 시작했고 그러한 곳들은 어김없이 영국의 모습과 닮아가기 시작했어요. 인도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졌고 영국인들을 인도에서 몰아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캘커타 지역을 영국군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어요. 캘커타는 영국 상인들이 지배하게 된 것이죠. 영국의 동인도 회사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을 무렵, 바하두르 샤2세가 태어났습니다. 영국인들은 인도를 자기네 나라인 양, 사법권을 행사하고 간섭하고, 세금을 가로채기도 했어요. 이러한 영국의 지배에 영국인들은 분노했습니다. 영..

[현대 01] 빅토리아 여왕, 만국 산업 박람회, 수정궁

빅토리아 여왕은 대영제국의 군주였어요. 대영제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네 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은 만국 산업 박람회를 열기 위해 거대한 건축물이 필요했습니다. 박람회에는 세계 각국의 발명품과 기계, 상품들이 선보일 예정이었기 때문이죠. 유리 건물을 설계한 조지프 팩스턴 - 수정궁 조지프 팩스턴은 정원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온실을 지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유리 궁전을 설계했습니다. 수정궁은 영국의 하이드 파크에 건축되었습니다. 그 크기는 무려 축구장 10개 정도의 크기였죠. 조지프는 수많은 쇠와 유리를 조립해 수정궁을 건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국 산업 박람회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을 영국에 전시하기 위해 보냈습..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43 멕시코의 독립과 미국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에서는 공화국에 대한 반란이 일어납니다. 미국 이주민들과 뉴스페인 사이에 맺어진 협약으로 그곳에는 미국인 거주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을 ‘엠프레사리오’라고 불렀습니다. 멕시코가 독립을 하고 공화국이 된 뒤, 멕시코 정부는 미국 거주자들인 엠프리사오를 계속 인정해 주었습니다.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 들어온 미국인들은 그곳을 도시로 개발했고, 그들이 내는 세금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멕시코 땅에 사는 미국인들은 멕시코 시민이어야 하고 종교도 그들의 국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반란 - 엠프레사리오 시간이 지나면서 멕시코 내에 엠프레사리오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점점 멕시코 법을 따르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일들을 거부..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41 미국의 인디언 강제 이주법

미국에서는 원주민이 살고 있는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땅값을 지불하고 계약서를 써서 증명해야 했어요. 하지만 원주민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기도 했고 헐값을 치르고 원주민의 땅을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서부로 이주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살 곳이 부족하자 미국은 인디언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방법을 법으로 만들게 됩니다. 인디언 강제 이주법 점점 땅이 부족해지고 땅을 팔지 않으려는 부족이 늘어나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강제 이주 법’이라는 법률을 채택했습니다. 이 법은 원주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그들의 땅을 빼앗을 수 있는 사실상, 나쁜 법이었어요. 공정하지 못한 법이었죠. 당시 많은 원주민들은 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선교사들이 세운 학..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9 노예 무역 폐지

노예 제도 폐지론자 유럽과 아메리카 전 지역에서 인간의 평등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예 제도 또한 공존했죠. 존 로크의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자연법에 관한 글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생명, 건강,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사회단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죠. 하지만 영국 의회는 노예 제도를 법으로 금지하자는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노예를 통해 벌어드릴 수 있는 돈이 막대했기 때문이죠. 미국의 상황은 더 심각했어요.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고 헌번으로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 선포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의 내용에서 노예들은 제외된 것입니다. 미국 북부의 여러 주에서는 노예 제도를..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8 (뉴스페인)멕시코의 독립

세계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사상이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뉴스페인(멕시코)에서도 독립의 외침이 시작되었죠. 이러한 독립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수적이었어요. 뉴스페인이 멕시코로 독립할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돌로레스의 외침 미겔 이달고는 뉴스페인의 한 마을에 신부였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는 뉴스페인의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어요. 그의 연설은 ‘엘 그리토 데 돌로레스’라 불렸는데 돌로레스의 외침이란 뜻입니다. 그의 연설은 입에서 입을 통해 전달되었죠.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독립에 힘을 합하게 되었고 멕시코 시티의 성문 앞까지 도달했지만, 죄 없는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이달고는 군대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스페인 군대는 다시 그들을 공격했고 이달고의 독립군은 패하여 흩어져 버렸어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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