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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1] 우리 민족의 형성

대한민국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단언하기 힘든 문제죠.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6천 년 신석기시대를 거쳐 점차 발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발전으로 점차 다양한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졌다가 사람지기도 했어요. 한민족의 형성 우리 민족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곳은 만주 일대에서부터 한반도에 일으는 광활한 지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을 예맥 또는 한족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통상적인 호칭은 동이족입니다. '동이족'이란 동쪽 오랭 캐라는 뜻과 함께 '해가 뜨는 동쪽의 민족'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지요. 거디가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의미도 있답니다. 한반도의 신석기 문화..

한국사 2022.12.24

걸리버 여행기 서평

선상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걸리버는 여러 곳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소인국인 릴리펏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릴리펏은 굽의 높이나 계란을 어느 쪽으로 깨느냐의 문제로 대립하고 전쟁을 하기도했다. 왕은 거인인 걸리버를 이용해 적국을 속주로 만들려 했지만, 걸리버는 거절했고 이 일을 시작을 황제의 신임을 잃게되었다. 그리고 그를 반역자로 몰아 벌을 내리려는 음모를 알게되자 그는 릴리펏의 적국을 이용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릴리펏의 이야기는 아주 사소한 것을 이유로 오랜 전쟁을 하고 대립하고 있는 시대를 그리고 있다. 걸리버는 적국으로 가서 수많은 적의 배들을 나포해왔지만 어느새 그의 공로는 사라지고 변절자로 낙인찍혀 처형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나는 한번은 강력하게 저항해 볼까 하는..

책서평 2022.09.14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 테러 조직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정부, 군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것을 ‘테러리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왜 죄 없는 민간인들을 공격하는가?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공포를 일으켜서 정부에 압력을 넣게하고, 정부가 국민들의 압력에 못이겨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목적을 들어주게 된다는 계산으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테러 조직 알카에다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는 미국 911테러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빈 라덴은 무자헤딘이라는 게릴라 부대를 만들어 소련에 정했고, 1988년 다시 알카에다를 결성해 반미, 반이스라엘 투쟁을 합니다. 빈 라덴이 사망하자, 아이만 알자오히리가 이끌고 ..

색인 사전 2022.06.25

[현대 25]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지킨 메넬리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프리카로 달려들어 그들의 땅을 가르고 잘라 나누어 가졌어요. 그런데 단 두 곳 만은 아직 유럽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남아 있었어요. 서부 해안의 라이베리아와 동쪽 끝의 에티오피아가 바로 그곳이죠. 하지만 라이베리아는 해방된 노예를 위해 만들어진 나라로,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 완전한 독립국이라 보긴 여려웠죠. 에티오피아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진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은 에티오피아 였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에티오피아에는 황제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북부의 요하네스 4세와 중부의 메넬리크 2세가 그들이었습니다. 둘 다 자신이 왕 중의 왕이라 주장했지만, 결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넘보고..

[현대 24]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와 니콜라이 2세

1889년 304년간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의 알렉산드르 3세가 제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는 오스만 튀르크의 땅을 일부 빼앗은 자로 싸움을 매우 좋아하고, 러시아를 현대화하는데도 노력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는 상테페테부르크 거리를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도중 암살자가 던진 폭탄에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3세 아버지가 죽임 당하는 것을 경험한 그는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도시들의 자치권을 빼앗고, 귀족들에게 특권을 주었죠. 귀족들이 농민들을 억압해도 된다는 권리를 받음 샘이었어요. 또한 차르를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내기도 했죠. 차르의 권력은 신성시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알렉산드르 3..

[현대 23] 오스만 투르크의 압뒬하미트

1878년 압뒬하미트는 영토의 절반을 잃어버린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통치자였습니다. 제국의 관리들은 자신의 안락을 꾀하고 사치를 즐기는데 관심을 쏟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소홀했어요. 강력했던 동양의 오스만 튀르크는 ‘유럽의 병자’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었어요. 이렇게 병들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오스만 튀르크는 거대한 제국이었고 압뒬하미트는 그 제국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철권 통치 오스만 투르크에서는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릴 권리를 가진다고 하는 새로운 사상이 번져 있었지만 압뒬하미트는 여전히 강력한 왕권을 원했습니다. 그는 국민들이 의회를 열어 헌법을 만드는 것을 허락했지만 ‘국가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을 추방할 수 있다는 법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또 ..

[현대 22]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

브라질의 첫 번째 황제 페드루 1세는 포르투갈 국왕의 아들이었어요.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1년 후 그는 브라질을 아버지에게서 독립하는데 성공했어요. 그렇게 브라질은 국가가 되었고 페드루 1세는 브라질의 첫 번째 국왕이 되었어요. 하지만 브라질에는 막강한 권세가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 그의 통치는 쉽지 않았죠. 그의 통치 9년째 되는 해 브라질의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페드루 1세가 브라질의 눈치를 보는 것과, 국민들에게 충분한 자유가 필요하다 주장하는 봉기였어요. 봉기가 일어나자 페드루 1세는 도망가버렸고 아직 7살인 그의 아들이 페드루 2세가 통치자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린 왕을 위해 대신들은 위원회를 만들어 페드루를 교육했어요. 젊은 국왕 페드루 2세 ..

[현대 21] 다이아몬드 러시, 보어 전쟁

보어인은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이라는 네덜란드 무역항에 정착한 그들의 후손을 말합니다. 그들은 후에 케이프 식민지란 이름으로 그곳을 네덜란드 식민지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백 년 후 영국은 케이프 식민지를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영국의 식민지가 된 케이프는 영국의 법으로 다스려지게 되었죠. 보어인들은 영국의 법 중, 노예를 자유롭게 해 주는다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예와 나란히 이웃해 살고 싶은 생가도 없었죠. 그래서 수천 명의 보어인들은 북쪽으로 이동해 오렌지 자유 주와 트란스발이라는 식민지를 다시 만들었어요. 다이아몬드 러시 그런데 오렌지 강가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광산업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곧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산들이 들어섰죠. 드비어 형제도 '드비어스'라는 광산 회사를 만들었는데,..

[현대 20] 영국과 아일랜드 (감자 마름병)

섬나라 아일랜드는 자치권을 요구했고 대영제국은 그것을 거절하면서 분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싸움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죠. 1541년 영국의 헨리 8세는 아일랜드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는데, 문제는 그가 프로테스탄트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영국 프로테스탄트 국왕들,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 차별 대부분의 아일랜 사람들은 가톨릭이었는데 헨리 8세 이후 프로테스탄트 국왕들은 아일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차별했기 때문이에요. 가톨릭 신자의 토지를 빼앗아 프로테스탄트 신자에게 주었고, 가톨릭 신자는 토지를 살 수도 증여받을 수도 없게 만들었죠. 그리고 아일랜드의 의회도 오직 프로테스탄트 신자만이 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감자 마름병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일랜드 1845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감..

[현대 19] 스크램블, 아프리카 차지하기

리빙스턴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또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았죠. 그곳에는 금과 은은 물론 석회석과 고무나무 등이 있었고 목화, 커피, 차를 재배하기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스크램블, 아프리카 차지하기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는 아프리카 해안에 무역항을 건설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아프리카 땅을 아주 차지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는 왕자 때부터 식민지를 확보해서 부강한 나라가 되길 꿈꿨던 인물입니다.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의 가운데에 위치한 콩고에 '아프리카 협회'의 이름으로 통상 기지와 선교 사무소를 세우고, 그곳은 이제 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아프리카 협회란 아프리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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