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현대편

[현대 21] 다이아몬드 러시, 보어 전쟁

뽀선생Kimppo 2022. 6. 1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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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인은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이라는 네덜란드 무역항에 정착한 그들의 후손을 말합니다. 그들은 후에 케이프 식민지란 이름으로 그곳을 네덜란드 식민지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백 년 후 영국은 케이프 식민지를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영국의 식민지가 된 케이프는 영국의 법으로 다스려지게 되었죠. 

 

보어인들은 영국의 법 중, 노예를 자유롭게 해 주는다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예와 나란히 이웃해 살고 싶은 생가도 없었죠. 그래서 수천 명의 보어인들은 북쪽으로 이동해 오렌지 자유 주와 트란스발이라는 식민지를 다시 만들었어요. 

다이아몬드 러시

그런데 오렌지 강가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광산업자들이 몰려왔습니다. 곧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산들이 들어섰죠. 드비어 형제도 '드비어스'라는 광산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는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다이아몬드 회사로 남아 있어요. 이렇게 다이아몬드 러시가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남아프카의 강가로 몰려왔어요. 그곳은 보어인이 만든 두 개의 식민지, 그리고 영국이 지배하는 케이프 식민지의 중간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영국은 재빨리 그곳은 자기네 땅이라고 선언했죠. 

 

트란스발의 골드 러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얼마 후 1886년 보어인들이 만든 식민지 트란스발에서 금이 발견되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금이었어요. 하지만 그만한 금을 캘만한 광산을 지을 수 없었던 트란스발 정부는 영국과 거래를 했어요. 영국의 광산업자가 그곳에서 금을 캐고 그것 중 일부를 트란스발에게 주는 것으로 말이죠. 

보어 전쟁

영국은, 보어인들 주변 땅을 식민지로 만들고 트란스발의 정치적 문제에도 개입했습니다. 트란스발 사람들은 영국이 그들과 더불어 오렌지 자유주까지 넘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899년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주는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했어요. 이 전쟁이 '보어 전쟁'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이틀 후, 보어인들은 마페킹이라는 작은 도시를 포위했는데, 케이프 식민지의 철도 거점 도시였죠. 

 

전쟁은 영국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세 차례의 전투에서 영국군은 무참히 패배했어요. 하지만 영국군이 결국 마페킹을 탈환했고 이 후로 전쟁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영국군은 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주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했습니다. 1902년 보어인들과 영국인들은 '베레니깅 평화 조약'을 맺고 남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을 모두 영국이 지배하는 '남아프리카 연방'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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