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스턴 이후 수많은 탐험가들이 아프리카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탐험하고 또 돈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도 살펴보았죠. 그곳에는 금과 은은 물론 석회석과 고무나무 등이 있었고 목화, 커피, 차를 재배하기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스크램블, 아프리카 차지하기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는 아프리카 해안에 무역항을 건설하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아프리카 땅을 아주 차지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는 왕자 때부터 식민지를 확보해서 부강한 나라가 되길 꿈꿨던 인물입니다. 레오폴드 2세는 아프리카의 가운데에 위치한 콩고에 '아프리카 협회'의 이름으로 통상 기지와 선교 사무소를 세우고, 그곳은 이제 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아프리카 협회란 아프리카 대륙에 현대 문물을 소개한다는 명복으로 만들어진 단체였어요.
그러자 독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죠. 1880년 독일 제2 제국이 아프리카의 동부와 서부 몇 곳을 독일의 소유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동남부를, 프랑스는 서부와 남서부, 북부를 차지하고는 상콩고의 추장들을 구슬려 평화 조약도 맺었습니다. 이탈리아 영국도 아프리카 땅을 차지하려 나섰어요. 1880년 이후 몇 년을 '스크램블'이라 부릅니다. 아프리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회의
1884년 독일은 베를린 회의를 열어, 아프리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전쟁은 하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았어요. 전쟁을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인명 피해도 크니까 싸우지 말고 나눠갖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무역 기지와 선교 사무소를 차린 나라가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결정은 수천 년 그곳에서 살아왔던 아프리카의 부족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무시했고, 자신들이 더욱 뛰어난 인간이라고 자부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문명화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베를린 회의의 이 합의는 아프리카의 불행을 가져왔어요. 수많은 유럽의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땅 주위에 경계선을 그어 이름을 붙였죠. 유럽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부족을 모이게 만드는 경계선을 그어 식민지 백성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세월이 지나 1900년에 아프리카 대륙은 거의 모두 유럽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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