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근대편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8 (뉴스페인)멕시코의 독립

뽀선생Kimppo 2022. 4. 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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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사상이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뉴스페인(멕시코)에서도 독립의 외침이 시작되었죠. 이러한 독립에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수적이었어요. 뉴스페인이 멕시코로 독립할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돌로레스의 외침

미겔 이달고는 뉴스페인의 한 마을에 신부였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는 뉴스페인의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어요. 그의 연설은 ‘엘 그리토 데 돌로레스’라 불렸는데 돌로레스의 외침이란 뜻입니다. 그의 연설은 입에서 입을 통해 전달되었죠.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독립에 힘을 합하게 되었고 멕시코 시티의 성문 앞까지 도달했지만, 죄 없는 시민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이달고는 군대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스페인 군대는 다시 그들을 공격했고 이달고의 독립군은 패하여 흩어져 버렸어요. 이달고는 체포되었고 처형당했습니다. 그는 뉴스페인을 해방시키지 못했지만 멕시코에서는 지금도 해다마 9월 15일이면 대통령이 나와 이달고의 ‘돌로레스의 외침’을 읽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독립 기념일로 보낸답니다.

 

멕시코 공화국 탄생

이달고의 용감한 독립 운동은 실패했지만, 남아메리카의 다른 식민지들이 독립을 선언하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을 보자 뉴스페인은 다시 독립을 위해 싸기로 했습니다. 이 두 번째 봉기를 주도한 사람은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이 파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달고의 군대 중 한 부대를 지휘했던 사람이니다. 이달고가 처형된 후 모렐로스는 훈타를 결성하고, 뉴스페인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선언하죠. 그들은 뉴스페인의 이름을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새로운 헌법도 만들었습니다. 그 헌법에는 모두 똑같이 투표하고, 개인의 재산을 가질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들이 들어있었어요.

 

하지만 모렐로스의 군대도 스페인 군대와의 싸움에서 졌고 모렐로스도 이달고와 같이 처형 당하고 말았어요.

뉴스페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반란 지도자는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라는 크레올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 충성한 사람이었지만, 충성스러운 군인으로서의 훈장을 크레올이란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반란에 동참하게 된 인물이었어요. 그래서 이투르비데는 스페인 군대에 몸답고 있으면서 뉴스페인의 독립을 이뤄낼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어요.

그는 뉴스페인을 독립시켜서 멕시코라는 이름의 독립 왕국을 만들고, 평등한 권리를 백성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하며, 로마 가톨릭을 공식 종교로 채택하자고 했습니다. 장교들과 멕시코의 혁명가들도 그의 말에 찬성했어요. 그들은 강력한 반란군 지도자 베센테 게레로의 군대와 연합해 스페인 총독을 끌어내렸습니다. 1821년 8월 24일 스페인은 멕시코의 독립을 허락한다는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마침내 멕시코는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투르비데는 멕시코의 황제 아구스틴 1세가 되었습니다. 독립을 이루고 황제가 된 이투르비데는 권력을 휘둘렀어요. 곧 반란이 일어났고 9개월 동안의 아구스틴의 독재는 끝이 나고 멕시코는 드디어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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