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문명은 황허 유역에서 나타난 중국의 고대 문명을 통틀어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다양한 유적들이 발견되면서 황허, 양쯔강 문명 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중국의 신화와 문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중국 창세신화 - 하늘과 땅을 창조하다
세상은 커다란 알 모양이었습니다. 이 알속에는 반고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1만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알에서 잠을 자던 반고는 깨어났습니다. 그는 도끼로 혼돈을 나누었어요. 무거운 것은 땅이 되었고 가벼운 것은 하늘이 되었지요. 그는 하늘과 땅이 만나지 않도록 온 몸으로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반고는 나이가 들어 쇠약해졌고 곧 운명하게 되었지요. 그가 죽자 그의 몸이 세상으로 흩어지며 물, 하늘, 흙, 나무, 태양, 달 등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반고는 생명의 근원이었던 것이죠.
삼황오제
반고가 죽은 후 어느 날 세상을 쓸어버릴만한 대홍수가 일어납니다. 이때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복희는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요, 그 이름에도 박속에 숨어 살아남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혹은 용의 모습으로 보기도 합니다. 역경에 의하면 복희는 8괘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그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화로써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와는 인류를 창조한 여신으로 복희와는 남매로 구전되었습니다. 여와라는 이름도 여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회남자는 중국의 유안이 전국의 빈객과 방술가를 모아서 편찬한 21권의 책으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남자의 기록에 따르면 태고의 4기둥이 무너지자 대지는 갈라지고 화재와 대홍수가 발생했고 이에 복희가 오색으로 빛나는 돌을 녹여 하늘의 구멍을 메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복희와 여와의 신화는 세계 곳곳의 창조 신화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와가 흙으로 사람을 빚어낸다는 이야기, 홍수 이야기 등은 길가메시 서사시, 그리스 로마의 신화, 성경 외에도 여러 곳에서 창조의 이야기로 구전되고 있습니다.
신농은 사람의 얼굴에 용의 눈을 가졌으며 농사짓는 일을 좋아해서 신농이라 불렸다합니다. 주역에 의하면 복희씨가 죽고 신농씨가 나타났습니다. 신농은 나무를 이용해 농기구를 만들고 농사짓는 방법을 천하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게다가 시장을 열어서 물건을 바꿔 각각 필요한 것을 얻게 했다고 하니 농경문화와 물물교환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정리하면 복희씨의 시대에는 수렵과 어업을, 신농씨 시대에는 농경생활과 시장이 발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세계 역사는 신화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만들어 낸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고대인들의 철학과 관점들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 중국인들은 세상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에는 분명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구전되어 왔다는 것을 희미하게 나마 볼 수 있습니다.
황허문명
황허는 서북쪽의 황토고원 지역에서 흘러내려와 황색의 강물이 흐릅니다. 이곳은 중국의 문명이 시작된 곳이지요. 그래서 황제는 노란색을 의미하는 ‘yellow∙黃∙황’을 쓰는 황제라 불리웠는데 이때의 황제(黃帝)는 황하 지역을 다스리는, 다시 말하면 문명의 발원지를 다스리는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였답니다. 후에 진시황이 처음 쓴 황제(皇帝)와는 다릅니다. 진시황은 임금 황皇를 써서 황제란 우주만물을 주재하는 초월적인 절대신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는 하늘의 아들, 천자라는 명칭과도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하모도 문화
1973년 양쯔강 이남인 하모도 지역에서 벼농사 유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석기, 골기, 목기, 토기 등이 다수 발굴되었는데요, 특히 나무나 대형 포유동물의 뼈로 만든 쟁기를 사용하여 벼를 재배하는 농기구로 상용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상에 나무 기둥을 박고 판을 얹어 집을 짓는 건축 양식은 같은 시기 북쪽의 반지하 건축과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앙소 문화
신석기 시대 중기의 채색한 도기인 채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처음으로 발견된 곳이 황하 중류의 하남성의 앙소촌이라 앙소 문화라가 불립니다. 앙소 문화의 토기 제작은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이는데요, 고운 점토로 항아리, 단지, 보시기, 병의 모양으로 만들어 요지 안에 넣고 봉한 다음 불을 사용하여 토기를 구웠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홍갈색을 띠고 있는데 흑색과 갈색의 사람 얼굴이나 물고기, 사슴과 같은 문양을 그려 넣어 매우 아름답습니다.
앙소 문화의 초기, 반파 문화의 중심지에서 신석기 유적지를 발굴하였는데, 기원전 45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주위는 방어용 도랑으로 둘러쌓였고 도랑의 안쪽으로는 나무로 둘렀으며 실제 주거지는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무리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각 무리는 대형과 중형 주거지가 하나씩, 그리고 소형 주거지가 발견되어 총 100호 정도로 대략 400명 정도가 모여 살았던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역사책에는 삼황오제 후에 하,은,주라는 3개의 세습왕조로 교체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어디까지가 신화시대에고 어디부터가 역사시대인지 그 구분이 모호합니다. 대체적으로 주나라부터를 역사시대로 인정합니다.
하(夏) 나라의 탄생
삼황오제의 마지막 황제인 순 임금 때 중국에 커다란 홍수가 일어나, 우가 그것을 수습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습니다. 이에 순임금이 우에게 왕위를 양위하니 중국 최초의 세습 왕조인 하나라가 탄생했습니다. 하나라는 하남성의 이리두 유적, 동하품 유적 등의 발견으로 실재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왕조 은(殷)나라
은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실재가 확인된 최초의 왕조입니다. 기원전 1600년 경 황하 중류 지역에서 번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 국가들의 연맹으로 구성되었으며, 청동기와 문자 그리고 태음력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은나라 왕은 정치와 종교 모두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때문에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죠.
갑골문자(甲骨文字)
전쟁 등 나라에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점을 치곤 했는데, 바로 이 점 칠 때에 사용된 것이 갑골 문자입니다. 점을 칠 때 짐승의 뼈, 혹은 거북이의 등에 점을 칠 내용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렇게 새겨진 문자를 갑골문자라고 합니다. 갑골문에는 점칠 내용뿐 아니라 국가의 중요 사안, 일상생활을 비롯한 소소한 일들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갑골문자에는 중국 고대의 문자 형태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신앙과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세상을 위해 생명을 내놓은 반고는 존재 자체가 공기, 물, 불, 흙이었습니다. 이는 고대 철학자들이 우주의 기본 요소라 믿었던 원소와 동일합니다. 여와는 홍수를 막아내고 인류를 창조합니다. 복희는 뇌(벼락)신의 아들로서 불을 다룰 수 있게 해 주었고, 문자를 만들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신농은 사람들에게 농사와 상업을 가르쳐 먹고사는 문제를 한걸음 발전시킵니다. 현대의 우리에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되고 있는 물과 불, 그리고 농사와 상업이 그들의 시대에는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가, 혹은 탁월한 누군가가 인간에게 주어 혁명같이 인류의 삶은 바꾸어 놓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중국의 신화와 황허문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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