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 로마제국은 25명의 군사 황제가 난립하며 모든 분야에서 위기를 맡게 됩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속에 집권하게된 디오크레티아누스는 거대한 제국을 한번에 통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막시미아누스를 세워 제국의 서쪽을 맡기고 자신은 동쪽을 관활했습니다. 그리고 각각 한명의 부제를 세워 사두정치 체제를 이루었어요.
나누어진 로마
이 체제가 오래 갔던 것은 아니지만 이 때부터 로마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져 통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누스 대제 집권시기인 313년 밀라노 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하고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로마의 수도를 이전하게 됩니다.
사실 로마의 기독교는 로마의 왕을 신으로 인정하시 않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모든 신을 부인하고 신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주장하니, 눈앳가시 같은 존재였죠. 때문에 의문의 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끔찍한 박해가 시작되기도 했었죠.
게으만족의 대이동
그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다시 일어서려 했던 4세기 후반에 위기를 맞게 됩니다. 라인강과 디뉴브 강 북쪽에 살던 게르만 족이 유라시아 대륙의 훈족을 피해 대거 로마 영토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는 이것을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말합니다.
에른스트곰브리치는 이 시대를 천동 번개가 치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둥이 올리고, 어디서 울리는지 알 수가 없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며 산들은 뿌연 안개 뒤로 모습을 감추고 사방에서 구름이 몰려오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천둥소리가 좁은 계곡에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고 여기저기서 거센 바람이 밀려옵니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번개 구름은 물러가고 맑은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이는 그러한 풍경은 이 시기의 로마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훈족의 공격
천둥번개가 쳐서 로마 제국을 산산 조각냈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게르만 족이나 킴브리족 등 이민족이 로마를 쳐들어 온것은 사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죠. 그럴 때마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그들의 침입을 막아냈습니다. 그런데 이번 천둥은 멀리 진시황제가 세운 만리장성 부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 초원에 살던 기마부족이 더이상 중국을 약탈하며 살기가 어려워지자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던 것이죠. 이들이 바로 훈족 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렇게 생긴 부족은 처음 봤을겁니다. 키도 작고 눈도 작고, 말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말 위에서 활을 쏘아되고는 순식간에 방향을 돌려 달아나기도하고, 공격을 할 때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느 부족보다 무시무시 했어요. 심지어 용맹스러운 게르만족조차 이들을 피해서 도망칠 정도였습니다.
게르만족의 한 갈래인 서고트 족은 안전한 로마제국에 피신하길 원했고 한 동안은 그렇게 잘 어울려 사는 듯 했지만 기근이 일어나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게르만 부족이 국경을 뚫고 밀려 들어왔고 한 부족이 패하면 다른 부족이 그 뒤를 이어 싸워 결국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수도 없는 게르만 족들이 뒤를 이어 계속해서 싸웠기 때문에 이 시대를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게르만 족 중 일부 부족은 오늘날에도 독일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지역의 이름과 같습니다. 슈바벤, 프랑크, 알레만 등이 그렇죠.
아틸라
훈족은 사실 게르만족에게만 위협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수장 아틸라의 통치 아래 치뤄진 전투에서는 온 유럽이 힘을 합해 싸워도 제압이 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대교황이라고 불린 레오1세의 설득당한 아틸라는 이탈리아를 떠났고 로마도 구제할 수 있었어요.
이 때 서로마 제국을 실제로 지배하던 것은 군대였고 대부분이 게르만족으로 구성된 이 군대는 서로마의 마지막 왕 로물르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하고 게르만족이 왕이 되어 이탈리아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서로마 제국의 종말을 의미했고 원시로부터 지속되어온 고대 시대의 종말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476년 새로운 시대 중세가 시작됩니다.
비잔티움 제국
살아남은 동로마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옛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 제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국의 황제는 유일한 로마의 황제이자 크리스트교 세계의 지배자로 행사하게 되었지요. 서로마 각지의 게르만 왕국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새로운 제국을 세우기에는 그들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비잔티움 황제였던 유스타니아누스는 다시 한번 로마 제국을 부흥 시키고 싶어했어요.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세금을 늘린데 불만을 품은 시민들을 군대를 동원하여 제압하기도 했어요.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돔양식의 소피아 대성당을 세우고 로마 제국의 영화를 되살리려고 애썼어요. 특히 고대의 로마 법전들과 학자, 법관들이 쓴 주해를 수집하여 로마 대법전을 만들기도 했어요.오늘 날에도 여러 가지 법의 기초가 되어서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해요.
유스타니아누스
유스타니아누스는 20여년 전쟁을 통해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과 이탈리아의 동고트 왕국을 멸망 시키며 거의 옛 서로마의 땅을 회복하기도 하지요. 로마제국이 부활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통치가 오래가지는 못했답니다. 유스타니아누스 황제가 사망한 이후 비잔티움은 다시 위기를 맞게 됩니다. 7세기 전반에 페르시아의 침략을 가까스로 물리쳤지만 곧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일부는 이슬람 세력에 빼앗기기도 했지만 어려움을 견디고 비잔티움 제국은 살아 남았답니다. 병사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것이 효과를 발휘 했기 때문이죠. 사기가 높아진 병사들은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싸웠지요.
비잔티움 제국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에는 사실상 세계의 유일한 문명국이었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전통을 보전하였고 이를 이슬람과 서유럽에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유럽은 로마카톨릭교회로, 콘스탄티노플교회는 그리스정교회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부흥과 쇠퇴를 반복하며 바람앞에 등불같았던 로마의 역사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지고 서로마가 멸망하며 커다란 위기를 맡기도 하지만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서양의 만리장성이라는 콘스탄티노플 전체에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쌓습니다. 이 성벽은 3층 구조를 가지고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라고도 합니다.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 당할 때인 1453년까지 살아남아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비잔티움 제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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