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그리스, 거의 모든 역사의 기반

뽀선생Kimppo 2021. 8. 7. 16:57
반응형

역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세상 전반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흐르고 있는데요, 그중 고대 그리스는 특별히 서양의 역사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에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그리스를 빼고 서양의 역사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들을 재해석하고 다시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로마 역시 그리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니, 로마의 작가들은 그리스 풍의 글을 썼고 로마의 영웅들은 그리스의 철학을 공부하고 그리스의 문화와 과학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도 그리스 문화를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의 영향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현대에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그들의 탁월함은 무엇이었을까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초능력을 제외하고는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 고대 문명의 신들과 비교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는데요.

사실 강력한 신을 섬기는 나라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농사에서는 자연의 움직임이 너무나 중요했고, 그 자연을 움직이는 신이 있디고 믿었어요.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을 가진 신을 숭배하게 되었겠죠. 여기서 왕은 신의 대리자가 되어 강력한 왕권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왕이며 동시에 제사장이기도 했죠. 이것은 뚜렷한 계급 사회를 만들었고 지배자들은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강한 규제를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은 물리적으로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신 중심의 국가들은 폐쇄적인 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톨릭이 지배적 위치에 놓였던 중세 시대만 보아도, 종교가 세상을 지배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는 애초에 농사 짓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바다를 가까이하고 있는 지리적 위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도시국가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무역에 큰 발판이 되었을 것입니다. 상업은 초기 계급 사회를 무너트렸고 상공업으로 성공한 부유한 계층이 생겼는데 거기엔 평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한 곳에서 돈은 곧 권력입니다. 신본주의 계급사회에서는 계급을 뛰어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면 상공업의 도시에서는 가능성이 있는 게임이었겠죠. 이는 자연스럽게 민주주의 체제를 자리 잡게 했고 부유하고 자유로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학문을 연구하고 광장에 모여 토론도 하고, 멋진 예술 작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들에게도 신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리는 신의 모습은 인간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는 인간 중심의 문화를 형성합니다.


민주주의 발판 아테네



아테네의 자유로운 정신은 민주주의가 꽃 피우기 좋은 기반을 만들어 주었지만 참주정과 민주정을 오락가락하며 방황의 시기를 거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화폐의 사용이 활발해지자 상공업이 번창하였고 그에 따라 부유한 평민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평민의 힘을 강하게 만들었고, 아테네의 민주정치의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페리클레스 (BC 461-429)시대에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완성됩니다.

사회주의 발판 스파르타


반면 같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는 소수의 도리아인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한 부분을 정복하며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를 세웁니다. 다수의 원주민을 소스의 도리아인이 다스려야 하다보니 강력한 권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스파르타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고 지배계급인 스파르타아테스가 정치를 독점하고 있었어요. 스파르타인들은 법으로 상공업을 금지했습니다. 금이나 은을 소유하는 것도 금지돼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화폐는 쇠막대였기 때문에 무역을 하기도 어려웠죠. 사실상 스파르타는 농경사회였고 법으로 부를 균등하게 나누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실패했지만, 플라톤에겐 매우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의 저서 [국가]에서 말하는 이상 국가의 모습은 스파르타를 닮아 있습니다. 재산은 물론 자녀 교육에 있어서까지 모든 것이 국가의 규제 안에서 계획되고 조직되어야 하는 것이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후에 사회주의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역사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테네는 옳았고 스파르타는 틀렸다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상황속에서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시대의 특징들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특징이 후에 필요에 의해 재선택되고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여유가 발전을 가지고 온다는 것입니다. 신 중심의 사회는 제사장을 정치적 목적으로 세워 사회를 규제하려 했고 그것은 강업적이고 엄격한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폐쇄된 사회에서 발전은 더디고 답답해 보입니다. 중세의 어둠을 지나 르네상스 문예부흥의 시기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의 부를 기반으로 다져놓은 학문과 문화를 재탐구하고 재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리스, 그들의 탁월함은 여유와 자유 속에서 만끽했던 그들의 사유의 산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https://youtu.be/n84uHnZVQy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