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프리카로 달려들어 그들의 땅을 가르고 잘라 나누어 가졌어요. 그런데 단 두 곳 만은 아직 유럽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남아 있었어요. 서부 해안의 라이베리아와 동쪽 끝의 에티오피아가 바로 그곳이죠. 하지만 라이베리아는 해방된 노예를 위해 만들어진 나라로,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니 완전한 독립국이라 보긴 여려웠죠.
에티오피아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진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은 에티오피아 였습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에티오피아에는 황제가 두 명이 있었습니다. 북부의 요하네스 4세와 중부의 메넬리크 2세가 그들이었습니다. 둘 다 자신이 왕 중의 왕이라 주장했지만, 결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넘보고 있었고 벨기에는 코앞에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전을 일으켰다가는 나라를 통째로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함께 살기를 택한 두 황제
요하네스는 영국군의 지원을 받았고, 메넬리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무기를 사들이고 있었죠. 하지만 이러한 동맹 관계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두 사람은 언제든지 유럽군대가 공격하면 힘을 합쳐 싸우기로 약속했죠. 그리고 '왕 중의 왕'이란 칭호는 요하네스에게 주고,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 중부 지방의 왕이 되는 것으로 합의를 했어요. 그런데 1889년 요하네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요하네스가 죽자 그의 군대는 흩어졌고, 이 틈을 타 메넬리크는 자신이 에티오피아의 황제라고 선언했어요.
아프리카의 사자 메넬리크
이렇게 황제의 자리에 오른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를 넘보는 이탈리아를 견제하는 것에서부터 통치를 시작합니다.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존중해 준다면 에티오피아의 작은 땅을 이탈리아의 식민지로 주겠다고 약속했었어요. 하지만 이탈리아는 서로 다른 계약서를 써서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 보호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메넬리크는 이탈리아와의 전쟁을 선택합니다.
에티오피아를 우습게 알았던 이탈리아 군대는 아두와라는 곳에서 에티오피아 군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탈리아 군대의 5배가 되는 엄청난 수의 적군을 보게 된 것이죠. 이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진짜 계약서를 썼습니다. 또 영국과 프랑스와도 비슷한 조약을 맺어, 이 세 나라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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