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현대편

[현대 11] 프랑스 공화국, 제정국,

뽀선생Kimppo 2022. 5. 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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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1789년까지 부르봉 왕조가 다스리던 군주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왕권은 신에게서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왕에게 속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서양의 사상은 유럽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사람들도 자기들을 대신할 지도자를 스스로 뽑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프랑스는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7월 혁명

그 길은 순탄하지 많은 않았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고, 사회는 불안정했습니다. 그런 불안한 시기를 틈타 나타난 사람이 나폴레옹이었어요. 그는 스스로 왕관을 썼고, 처음으로 공화국이된 프랑스도 막을 내리게 되었죠.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고 프랑스 제국이 시작된 것입니다. 나폴레옹 이후 다시 부르봉 왕조에서 국왕이 나왔고 샤를 10세는 예전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군주국 형태로 집권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참을 수 없었죠. 1830년 '영광의 3일간'이라 불리는 7월 혁명이 일어납니다. 파리 시민들은 혁명가가 되어 프랑스 군대와 대치했고, 샤를 10세는 도망가 버렸어요. 

 

프랑스는 다시, 공화국이 될 것인가 입헌 군주군이 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어요. 입헌 군주국이란 국왕이 존재하지만 문서화된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자기 멋대로 나라를 다스렸던 군주국과는 아주 다르죠. 당시 영국도 입헌 군주국이었죠.

 

7월 왕정 

이렇게 혁명 지도자였던 루이 필리프는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7월 혁명으로 왕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그의 통치 기간을 '7월 왕정'이라 부릅니다. 필리프가 국왕의 자리에 오르고, 이전과 다른게 입헌 군주제가 시행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왕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 생각했어요. 언제든지 법을 바꾸고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필리프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파리에서 거대한 집회를 열었고 겁을 먹은 필리프는 군대를 보내 해산 명령을 내리려하자 군중들은 다시 화가났습니다. 왕이 거대한 힘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좌지우지 하려한다 생각한 것이죠. 군중은 도시를 마구 파괴했어요. 필리프 왕도 황급히 영국으로 도피했습니다. 그렇게 1848년, 7월 왕정이 막을 내리고 프랑스의 제2 공화정이 시작됩니다. 

 

프랑스의 제2 공화정

제2 공화정은 새로운 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투표를 해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은 4년간 시민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내용이었죠. 프랑스는 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선거에 당선되었어요. 의회는 그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주진 않았습니다. 루이 나폴레옹은 임기를 마치고 다시 출마하려 했지만 의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1851년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체포하고, 프랑스의 헌법을 바꾸겠다고 선포했어요. 그는 법을 바꿔 대통령의 자리를 10년은 더 지키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파리 시민들이 아니었죠. 시민들은 거세게 반대했고 루이 나폴레옹은 군대를 보내 수많은 사람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되었다고 선포했죠. 다시 제2 공화정이 끝나고, 제2 제정이 시작된 것이죠. 

 

나폴레옹 3세는 크림 전쟁을 지원하고, 승라한 뒤에는 프로이센을 공격하겠노라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센이 준비를 채 마치지도 못한 프랑스를 먼저 공격해 왔어요. 나폴레옹 3세도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프로이센에게 포로로 잡히고 말았죠. 다시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공화국을 세울 수 있게 되니 프랑스 시민들은 기뻐했어요. 

 

프랑스의 제3 공화정

1870년 프랑스에 제3 공화정이 들어섰고, 프로이센과 화평을 맺었어요. 프로이센은 포로로 잡고 있었던 나폴레옹 3세를 풀어주었죠. 군주국, 제정국, 공화정을 정신없이 갈아치웠지만, 프랑스는 1870년부터 지금까지 공화정을 유지해 오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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