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근대편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6 신대륙, 각자의 꿈을 찾아 새로운 땅으로

뽀선생Kimppo 2022. 3. 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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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청교도들은 가톨릭의 모든 색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어 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의 국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가들만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그들을 분리파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신앙과 예배 방식을 고수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어떻게 북아메리카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분리파들을 차별한 제임스

제임스 국왕은 분리파들에게 불리한 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분리파 신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기도 하고, 교회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들은 헛간이나 마구간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죠. 사실 기회만 생긴다면 분리파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합니다.


브래드퍼드와 필그림

처음에는 북해를 건너 네덜란드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프로테스탄트들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그곳에서 자유로운 그들만의 예배는 가능했지만 그들 자신의 문화는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브래드 퍼드는 신앙과 함께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고 싶었어요. 자신의 자녀가 네덜란드 어를 배우며 네덜란드 사람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죠. 그래서 다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떠날 수 있는 돈도 마련하고 사람들을 모아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북아메리카로 떠났습니다. 메이플라워 호에 탄 모든 사람들을 필그림이라고 불러요. 필그림은 순례자들이란 뜻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순례를 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

새로운 터전을 발견하고 그들은 메이플라워 서약을 만들었습니다. 이 협의는 그들이 모두 합의해 정했고, 그것을 지키기로 맹세했죠. 하지만 새로운 땅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추위오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원주민들에게 옥수수 경작하는 법을 배워 겨우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들의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자만 필그림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어느 해는 풍년이 들었고 처음으로 추수 감사 주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필그림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왔습니다. 그곳이 바로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입니다. 지금 미국 동북부의 매사추세츠 주에 속해 있습니다.  


네덜란드와 신대륙

더 많은 영국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찾아왔고 그 일대는 ‘뉴잉글랜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캐다다에는 ‘뉴프랑스’가 남아메리카에는 ‘뉴스페인’이 자리 잡았던 때였죠. 당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난 네덜란드는 속도가 빠른 화물선으로 바다를 누비고 있었어요. 그리고 부유한 상인들은 아시아 곳곳에 ‘무역 기지’를 만들었고 그곳은 작은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로 배들과 계약을 맺고 아시아에서 가지고 온 비단과 향료, 차, 커피 등을 유럽에 팔았고 이익금을 나누어 가졌어요. 이런 일들이 많아지자 네덜란드 정부는 이 상인들 집단을 하나로 묶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라는 이름의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회사의 이익으로 네덜란드는 곧 부자 나라가 되었어요.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바쁜 항구가 된 것이죠. 네덜란드는 세계 최고의 해상 무역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지원을 받았던 탐험가 허드슨은 북서 항로를 찾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가 탐사했던, 이제는 허드슨 강이라고 불리는 그 강을 알려줬고 네덜란드 상선들이 그곳을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대는 어느 때부터 ‘뉴네덜란드’로 불리게 되었어요. 네덜란드 정부는 그곳에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를 세웠고 네덜란드 사람들을 그곳에 정착해 살게 하기도 했습니다.

 

뉴암스테르담


맨해튼과 브로드웨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맨해튼에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를 짓고자 했습니다.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피레네 족에겐 보잘 것 없는 선물을 주고 맨해튼 섬을 비워달라고 했죠. 뉴암스테르담 식민지 개척자들은 섬의 한쪽에 커다란 요새를 짓었고, 거기서부터 섬의 끝까지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도 냈습니다. 그들은 그 도로를 ‘브로드웨이’라 불렀죠. 넓은 길이란 뜻의 이 길은 현재 뉴욕시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뉴암스테르담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전 세계의 상선들이 그곳으로 몰려 들어왔습니다.

네덜란드 식민지 주위에는 온통 영국 식민지 들이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의 영역까지도 늘 넘봤고 결국 영국인들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쳐들어왔습니다. 그 무렵 영구에서는 제임스 국왕이 죽고 찰스 2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뉴네덜란드의 영토는 그의 소유임을 선언했고, 그곳을 그의 동생인 요크 공에게 선물했습니다. 요크공은 전함들을 북아메리카로 보내 그곳을 포위했어요. 뉴암스테르담 사람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인들이 그곳을 차지했고, 요크 공의 이름을 따 그곳은 뉴욕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영국 시민이 된다는 조건으로 집과 재산을 보호해 주기로 했어요.

뉴욕 시에 있는 월스트리트는 네덜란드가 뉴암스테르담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높은 담이었습니다.

 

https://youtu.be/FzPbK9se2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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