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 정신은 유럽 각국으로 흩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문은 유럽 각국으로 인쇄되어 팔려나갔고 여전히 왕정 시대를 구가하던 유럽의 평민들에 가슴에도 자유를 향한 갈망이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왕정을 끝내고 공화정을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길도 쉽지는 않았죠. 프랑스 혁명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여전히 절대 왕정을 유지하고 있던 프랑스에 루이 16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루이 14세는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을 끊임없이 했고, 루이 15세에 일어난 7년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의 국고는 거의 바닥이 났어요. 그럼에도 귀족은 세금을 내지 않았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었습니다.
이렇게 제3계급에 속한 사람들만 세금을 냈는데, 그들은 물건을 살 때도 세금을 냈고, 교회에도 세금을 냈어요. 통행세도 내야 했죠. 그런데 귀족들의 삶은 완전히 딴판이었어요. 그들은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루이 16세는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받아야겠다고 주장했지만, 귀족들과 그들의 군대에 도움을 받고 있던 터라 강력히 그것을 실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역시 귀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죠.
게다가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은 더욱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서민의 삶을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왕비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고 프랑스가 가난해 지고 자신들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그녀 때문이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독립 선언문이 발표되었고, 그 인쇄물이 프랑스에서도 출판되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민 의회
프랑스의 재정 상태가 점차 악화되자, 프랑스의 3계급, 즉 성직자, 귀족, 일반 백성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보여서 세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베르사유에 모였으나 처음부터 그 회의는 공평하지 못했어요. 3계급 사람들은 1,2계급 사람들과 다르다는 표식을 하기 위해 다른 색의 옷을 입어야 했죠. 또한 베르사유에 들어갈 때조차 정문이 아닌 샛문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국왕은 각 계급별로 찬반을 투표하게 했지만 1,2계급이 새로운 세금에 대한 법을 반대한다면 제3계급의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는 구조였습니다.
제3계급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국민 의회’라 이름 짓고 제1계급인 성직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들은 백성들의 삶을 눈 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에 그들의 설득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챈 귀족들은 루이 16세에게 ‘국민 의회’가 열리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이 16세는 이 말을 듣고 제3계급에게 배정된 방문을 걸어 잠그고 투표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국민 의회는 테니스 코트에서 회의를 열었어요. 그들은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다는 서약을 했는데, 이 서약을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라 부릅니다.
제3계급의 봉기
루이 16세는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한 제3계급의 대표를 흩으려 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절대 군주였던 왕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그것은 반란이었죠. 이 소식은 곧 베르사유 궁전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파리의 시민들은 전투를 준비했어요. 루이 16세는 겁이 났죠. 프랑스 군인들도 제3계급이니 파리 시민의 편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혁명군은 파리에 있는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했고, 죄수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화약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그날이 1789년 7월 14일이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은 함락되었고, 루이 16세의 권력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혁명군은 이제 파리를 장악했습니다. 시골에서도 촌민들은 부자들의 저택을 습격했고 귀족들을 살해했어요. 루이 16세와 그의 가족들도 튈르리 궁전에 갇혔습니다. 프랑스 국민들도 모두가 평등한 나라가 되길을 꿈꾸었던 것이죠.
기요틴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국민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논의했습니다. 국민 의회는 신분을 가리키는 모든 용어를 없애기로 합의했어요. 프랑스 사람이면 누구나 시민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되었죠. 그리고 성직자도 선거를 통해서 뽑기로 하죠. 한편, 이전 왕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세력들은 루이 16세를 다시 왕위에 올리기 위해 루이 16세와 그 가족을 몰래 빼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곧 발각되었고 그들은 다시 템플이라는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국민 의회는 프랑스는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결의하고 그 명칭도 ‘국민 공회’로 바꾸었습니다. 루이 16세는 기요틴이라는, 무시무시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나라,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은 프랑스왕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또 프랑스 내에서도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죠. 프랑스는 커다란 혼란 속에 있었어요.
국민 공회는 ‘국가 안전 위원회’라는 이름의 새로운 위원회를 구성하고 로베스피에르를 대표의 자리에 세웠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화국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조리 처형했어요.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도 모조리 기요틴으로 보내 처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어요. 공포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가 집권한 1년의 시간을 ‘공포 정치’라 부릅니다. 혁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때론 열광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처형되었죠.
마리 앙투아네트도 기요틴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기요틴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수가 끝도 없이 늘어나자 국민 공회는 그제야 로베스피에르에게 너무 과한 권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그도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희생자들과 같이 국민 공회에 의해 기요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계사 > [세계사] 근대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0 증기 기관의 발명, 휘트니의 조면기 (0) | 2022.03.31 |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29 예카테리나 대제 (0) | 2022.03.25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27 제임스 쿡, 뉴질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0) | 2022.03.25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25 아메리카 독립 전쟁 (0) | 2022.03.24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24 유럽 7년 전쟁 (0) | 2022.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