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국은 점점 거대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7년 전쟁으로 많은 돈을 지출한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으려 했습니다. 아메리카 영국인들은 항구로 들어오는 모든 설탕과 당밀에 대해서 세금을 내야만 했어요. 다음에는 신문이나 책자, 카드를 살 때에도 특별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불만은 커져 갔겠죠.
식민지의 영국 시민들
영국 의회는 '조례'를 만들어 새로운 세법을 아메리카에 사는 영국인들이 지키게 했습니다. 앞서 아이야한 '설탕 조례', 모든 문서에 특별한 세금을 부과한 '인지 조례' 이후에도 더 많은 조례들이 통과되어 아메리카에서 거두어진 세금은 영국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어요. 아메리카 식민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영국의 의회가 식민지 주의 의회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세법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버지니아 주의 패트릭 헨리는 영국 의회의 일방적인 조례 반포를 비판했고, 식민지 주민들은 과세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어요. 이에 대영 제국의 조지 3세는 세금 중 일부를 철해 하기로 약속했죠. 하지면 몇 가지 세금을 철회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홍차에 대한 세금은 절대로 철회하지 않겠다고 영국 의회가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영국 의회는 식민지는 영국의 영토이므로 법률을 제정할 때 식민지 주민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식민지 주민들은 화가 났습니다. 식민지 항구에 주둔해 있는 영국 군인들 마저도 미워하게 되었죠.
보스턴 학살
그러던 어느 겨울 날 보스턴의 식민지 주민 일부가 눈을 뭉쳐 영국 군인에게 던졌고, 한 병사가 사격 명령을 내리면서 무장하지 않은 주민들을 사격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영국 군대가 같은 민족인 식민지 주민을 공격한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스턴 학살'이라 부릅니다. 사실, 이 일로 죽은 희생자는 5명이지만, 식민지 지도자들은 이 일에 과장된 이름을 붙였고 곧 이 소식은 식민지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어요. 이 일로 인해 영국 의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더욱 커져갔고, 영국에서 수입된 차를 사지 않는 불매 운동도 일어납니다.
보스턴 차 사건
보스턴 총독은 영국 차 불매 운동에서부터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자 식민지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어요. 인디언으로 변장한 그들은 영국에서 차를 싣고 온 배들이 있는 부두로 가서 342 상자의 차를 바다에 쏟아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의회는 급히 '참을 수 없는 조례'를 통과시켜 그들이 버린 차 값을 보상하기 전까지 항구를 폐쇄할 것이며, 영국 군대가 보스턴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집회도 금지시켰죠.
하지만 식민지 지도자들은 함께 모여, 군대 철수와 항구를 다시 열 것과, 수많은 세금 철회 등의 내용으로 한 청원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청원서로 결코 평화가 찾아 올거라 예상치는 않았습니다. 영국은 식민지와의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식민지 주민들도 맞설 준비를 했습니다.
미국 독립 전쟁
콩코드 지역을 중심으로 식민지 주민들의 민병대 훈련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은 그곳을 습격했습니다. 그렇게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됩니다. 워싱턴은 민병대를 데리고가 보스턴의 영국군 사령부를 포위했습니다. 영국군은 벙커힐의 아메리카 군대를 공격해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의 피해가 더 심했죠. 이러한 상황에 용기를 얻는 아메리카 군대는 아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토머스 페인은 '상식'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해 아메리카의 독립이 필요한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수많은 아메리카 사람들은 '상식'을 읽고 그 생각에 찬성했습니다. 로드아일랜드는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합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대륙 회의가 소집되었고, 식민지들은 힘을 합해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그것이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작성한 '독립 선언문'이었습니다. 1776년 대륙 의회는 '독립 선언문'을 채택합니다
독립을 꿈 꾸었지만, 아메리카는 영국군을 상대로 한 전쟁은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곧 아메리카 군대와 연합하게 되며 전쟁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어요. 네덜란드, 스페인도 아메리카의 편에 섰습니다. 영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죠. 영국은 점점 힘이 빠지고 국고도 바닥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영국은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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