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식민지에서 일어난 세 차례의 전쟁 이후에도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북아메리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캐나다와 남부 루이지애나 일대를, 영국은 동부 해안지대를, 스페인은 플로리다 부근과 뉴멕시코 일부에 식민지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땅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싸움은 멈출 수 없었죠.
조지 워싱턴
영국에서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가서 담배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 워싱턴은 토지를 측량하는 측량 기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오하이오 강 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닦는 것을 막으라는 영국의 왕 조지 2세의 명령을 전달하기 출발했어요. 프랑스 군의 본부에 도착한 워싱턴은 영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돌아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점점 추워졌어요. 그들 일행이 탔던 말들은 더 이상 함께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게다가 프랑스 편의 원주민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버지니아로 돌아온 워싱턴은 오가는 길에 점찍어 두었던 '오하이오 포크'에 요새를 지을 수 있도록 영국에 지원 병을 요청했습니다. 그곳은 세 개의 강이 합쳐지는 곳이었죠. 그곳에 요새를 짓긴 했는데 이미 프랑스 군의 힘이 강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워싱턴의 요새는 쉽게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워싱턴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어요.
영국의 빨간 군복
그 사이 영국에서 보낸 정규군 2천 명이 에드워드 브래독이라는 사령관과 함께 북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브래독은 산악 지형의 전쟁에 무지했고, 빨간 색 군복을 입은 영국 군대는 울창한 숲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브래독의 영국 군은 절반 이상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투를 시작으로 '프렌치 인디언' 전쟁이 시작됩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
유럽 여러 나라들은 이 전쟁에 뛰어 들었죠. 빨간 군복을 입어서 패배해야 했던 영국 군대도 경험을 통해 성장해 있었습니다. 그 무렵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나랏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여색에 빠져 있었고 사치와 낭비가 심한 인물이었습니다. 얼마 못가 프랑스는 영국에 밀리며 북아메리카에서 쫓겨나기 시작합니다. 워싱턴이 이끄는 부대는 오하이오 포크의 요새를 되찾았어요. 그리고 그 요새를 영국 수상의 이름을 따서 '포트 피트'라 불럽답니다. 지금의 미국의 피츠버그 시가 바로 그 요새가 있었던 자리를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입니다.
영국은 여새를 몰아 프랑스 식민지였던 퀘벡을 점령하고, 다음 해에는 몬트리올도 빼앗았습니다. 대부분의 뉴프랑스 지역을 빼앗긴 것이죠. 프랑스 사람들은 항복했습니다. 프랑스는 '파리 조약'을 맺으며 이 7년 전쟁을 끝냈고, 루이지애나 땅을 제외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를 모두 영국에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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