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설탕산업과 노예무역

뽀선생Kimppo 2021. 11. 1. 13:43
반응형

영국의 항해조례 발표뒤 영국과 네덜란드는 3번의 전쟁을 치뤘고 결과는 네덜란드의 패배였습니다. 네덜란드는 해상강국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삼각무역은 대서양의 무역을 대표했습니다. 영국의 직물, 무기, 유리 등을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바꾸고, 노예를 신대륙에 팔고 사탕수수, 담배, 면화, 커피 등을 받아 오는 방식이었죠. 한 번 항해에 여러 번의 거래를 하면서 수익은 높아졌어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설탕이 들어왔는데 당시 설탕은 흰 화물이라 불렸고, 노예는 검은 화물이라 불리며 상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영국의 유대인들은 노예무역을 주도하게 되었는데요, 이는 교황이 노예 무역을 금지했기 때무이었습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노예무역을 할 수 없었죠.



영국의 설탕산업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는 설탕산업이었습니다. 설탕을 정제하는데는 많은 자본이 투자되 시설을 갖춰야 했지만 높은 수익률을 보장했습니다. 설탕은 세계 자본주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7세기 이후 커피나 홍차 같은 음료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설탕은, 18세기로 접어들며 수요과 폭증했어요. 설탕의 소비량은 해가 갈수록 증가했습니다.

설탕이 이렇게 대중화 될 수 있었던 것은 흑인 노예들 덕분이었죠. 사탕수수 농사에는 흑인 노예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열대지방에서는 1년 내내 사탕수수가 재배 되었습니다. 사탕수수는 자라면 4미터가 넘고 베어서 공장으로 옮기고 분쇄하고 압착해 즙을 얻는데 이것을 정제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끓여야했죠. 이렇게 끓이려면 연료가 필요한데, 주변에서 뗄 것을 가져와야하는데 이러한 전 과정에서 대량의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동력 확보가 설탕산업의 핵심이었어요.


영국의 2차 항해조례는 설탕을 포함한 중요한 물품을 영국령끼리만 거래하도록해서 사탕수수 재배의 큰 전환저이 되었습니다. 설탕의 유통 판로가 바뀌는 것은 물론 아프리카 노예수입도 급증하게 되었죠. 설탕과 더불어 면화, 커피, 담배 등 플랜테이션 농장의 재배품목이 늙어나면서 노예의 수요도 증가했습니다. 당시 서인도 제도의 사탕수수 농장 노예들과 유럽 제당공장의 노동자들은 17시간이라는 살인적인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며 혹사당했습니다.

반응형

'세계사 > 역사 이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융황제 로스차일드  (0) 2021.11.02
면직물산업과 산업혁명  (0) 2021.11.01
영란은행  (0) 2021.10.31
청교도 혁명과 브레다 조약  (0) 2021.10.31
영국의 해적질과 스페인 무력함대 격파  (1)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