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역사 이슈들

면직물산업과 산업혁명

뽀선생Kimppo 2021. 11. 1. 14:16
반응형

영국에는 일거리를 찾는 농촌 실업자들이 많았습니다. 도시의 상인들은 이들에게 양털을 나누어주어 손질하여 실을 만들고 베틀을 이용해 옷감을 짜게 했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농촌의 실업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한 가내수공업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원재료를 주고 완성품을 수거하는 방식을 선대제라고 합니다. 선대제 덕분에 영국의 양모 수출은 그 부가치를 높일 수 있었죠. 17세기 중엽 이후 길드에서 배제된 유대인들은 농촌과 집접 거래하므로써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선대제에 참여했던 농민들은 후에 독립된 작업장과 도구를 지닌 소생산자들이 됩니다.

유대 도시상인들은 수거한 완성품을 유대인 도매상이나 무역업자에게 넘겼고 대상인자본과 결합하거나 스스로 모직물 도매상, 수출상이 되기도 하며 점차 진화해 생산자들을 지배했습니다.

매뉴팩처와 분업


선대제는 농민들이 약속을 어기거나 생산을 미루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상인들은 직접 생산도구와 작업장을 유지하면서 노동자를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초기 공장은 노동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기에는 더이상 생산량을 맞출 수 없게 되었고 분업을 시행하게 되었죠. 자본가들은 공장을 세우고 각자 능력에 맞는 분업으로 물선을 빠르게 만들 수 있었죠. 이것이 공장제 수공업 매뉴팩처입니다. 이러한 분업은 생상량을 급격히 높일 수 있었어요. 수공업자들은 점차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를 기계로 바꿔가기 시작했고 면직물공업 분야에서 가장 먼저 기계화가 이루어집니다.

면직물은 특히 유럽에서의 수요가 많았는데요, 의류 외에도 침대시트와 커튼 등에 이용되었습니다. 17세기 후반 동인도회사에서 들어온 염색된 인도 무명 캘리코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수입량이 많아지자 정부는 제한을 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전통 모직물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18세기 초 인도 무명에 맞설 면직물 제조가 영국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상인들은 레반트 지역을 드나들며 수입 원면을 들여왔고 그것으로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대제를 이용해서 말이죠. 하지만 레반트 지역의 원면만으로는 물량이 부족했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영국령 카리브 지역이나 브라질 등 여러곳으로 수입처를 확대했습니다.

1757년 인도에서 플라시 전투가 일어나는데 이를 계기로 원면 확복에 돌파구가 열립니다. 이 전투로 동인도 회사가 원면 생산지인 뱅골 지방을 장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벵골 지방의 조세징수권을 빼앗아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했으며 이때부터 여러가지 세금을 만들어 인도를 수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벵골에서 거둔 세금으로 원면을 사서 영국으로 보냈죠. 영국의 면직물산업은 본격적인 수출산업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실이 수공업으로 만들어진 면직물은 대량생산이 불가능했습니다.  1760년대에는 실을 미쳐 대지 못해 실 기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산업혁명

목수인 하그리브스는 면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인 방적기를 발명했습니다. 이것이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에는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방적기는 여러 단계의 개발을 통해 그 생산력이 상승되었고 옷감을 짜는 직조기도 발명되었습니다. 영국정부는 면직물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국내 면직물 수요를 증가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시행했습니다.

반응형

'세계사 > 역사 이슈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된 로스차일드 가문  (0) 2021.11.07
금융황제 로스차일드  (0) 2021.11.02
설탕산업과 노예무역  (1) 2021.11.01
영란은행  (0) 2021.10.31
청교도 혁명과 브레다 조약  (0)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