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 하리타에 무역관을 세웠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기독교 선교 문제로 일본에서 쫓겼난 후에는 약 200년 동안 네덜란드는 일본의 무역을 독점할 수 있었어요.
대항해시대의 일본
일본은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하면서, 서양과의 무역을 시작했는데, 이때 조총이 일본이 들어오게 됩니다. 일본은 이 조총을 만드는 기술로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조선의 기술들뿐만 아니라 사람들까지도 자국으로 끌고 갑니다. 임진왜란을 통해서 일본의 학문과 산업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전파하고 신도가 70만 명에 이르자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일본은 선교를 금지시키고 교회를 파괴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자국에서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대인들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기독교 전파의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중국
중국은 서양인들을 오랑캐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는데요, 1656년 네덜란드 상인들은 황제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예(삼배구고)를 가춰가며 청나라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중국과의 거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은, 아편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된 수익원은 금과 은, 귀금속 화폐 거래였습니다. 당시 은은 국제적인 화폐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돈이 상품이 된 것이었죠. 금과 은의 나라 간 시세 차익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때는 서양과 동양의 금은 교환비율이 차이가 컸습니다. 중국에서는 은이 금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럽에서 은을 싸게 가져가면 중국에서 환차익을 크게 얻을 수 있었죠.
그 무렵 일본에서 은이 대량 발견되면서 저평가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에서 은과 구리르 사들여 중국에 팔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은을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1560년 일조편법은 중국 정부가 모든 조세 수입을 은으로 통일한 것인데, 이 법 때문에 은은 공식 화폐가 된 것입니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 이후로도 유럽의 은이 계속 중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중국은 부유한 문명국이었습니다. 그래서 딱히 유럽의 물건들이 필요하지도 않았죠. 반면 유럽인들에게 중국의 비단 등의 상품은 인기가 높았어요. 중국과 유럽의 무역은 유럽의 무역적자로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중국은 무역을 통해 엄청난 양의 은을 들여왔습니다. 이러한 무역적자는 아편이 나타나면서 해소됩니다. 왜냐하면 중극이 아편 구입 대금으로 은을 냈기 때문이죠.
본 포스팅은 홍익희 선생님의 [유대인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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