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공부

[찐공부 1] 홈스쿨링을 시작하다

뽀선생Kimppo 2021. 7.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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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걷지도 기지도 않는 다만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학교를 보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많았다. 물론 공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도 많았다. 그와 더불어 나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한 경험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순간 누워있는 아이에게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은 나에게 닥치지 않은 일이니 크게 마음 쓰지 않으며 살아가다가...... 부지불식간에 아이는 7살 반을 지났다. 그제야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 '내가 뭐가 잘났다고 남들 다 보내는 학교를...' 하고 자책하기도 하고, 끝도 없이 남편과 이야기도 하면서 곧 맞이하게 될 캄캄한 미래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사는 것이 바쁘기도 했고, 아이는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해서 한글 공부는 물론, 영어 공부도 일절 하지 않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유치원에서는 학교 갈 아이들을  준비시키느라 한글 공부가 한창이었던 모양이다. 딸아이는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자기만 한글을 모른다고 푸념 비슷하게 했다. '아직 몰라도 돼.'하고 안심시켰지만 내 안에는 확신도 없었다. 

 

애를 낳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그때서야 알아보고, 찾아보고.... 책도 읽고 세미나도 다니면서 발등에 불을 태울 것인지 꺼트려야 할지를 열정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해도 맑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교육에 부정적인 마음이 많은 내가, 학교를 보낸다면 선생님의 권위나 학교의 질서를 따라서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까? 안보내면 몰라도 보낸다면, 그게 아이를 위해서 올바른 가르침일 텐데... 무슨 일만 있으면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되면 아이가 그 안에서 뭘 배우게 될까?' 

 

사실 그것은  공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마음이 문제였다. 그 마음으로 학교를 보내도 포기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학교를 보내는 것도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 어려웠다. 대안학교도 알아보았다. 하지만 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안학교는 별도의 국가 지원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재정 부담을 학교와 부모님들이 지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때부터 엄마 공부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홈스쿨링에 관한 책, 자녀 교육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가 원할 때 가르치자라는 생각에서 차츰 때에 맞는 교육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게 되었다. 이 부분은 각자의 주관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생각이 아니다. 모두 다 옳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맞는 것이 가장 옳은 방법인 것이다. 

 

7살, 무턱대고 어린이집을 그만둔 딸을 데리고, 산을 올라가고 놀이동산도 가면서 즐겁게 지냈다. 내 마음은 어려웠지만 겉으로는 잘 놀고 잘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글도 모르던 아이는 나의 처음 고집?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했던 아이가 임계점을 넘었는지 그냥 터져 나왔다고 밖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겨우... 한글을 읽기 시작한 딸아이와의 홈스쿨링 모험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 홈스쿨링에 처음부터 가르치는 선생은 없었다. 먼저 선(先), 살 생(生)의 진정한 의미로서의 선생이 있었다. 먼저 산 사람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학창 시절부터 공부와는 담 쌓은 사람이고,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진 사람이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길 좋아했던 사람이고, 교실이 너무나 답답했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외향적이어서 밖으로 싸다니지도 않았다. 그때 유일한 재미는, 비디오 가게에서 제3세계 영화를 보던 것이었다. 그러한 나의 성향은 내가 하는 일과는 절묘하게도 어울렸지만 홈스쿨링의 슈퍼 어머니로써의 필요는 채우지 못했다.

 

필요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선(先), 살 생(生)의 진정한 의미로서의 선생의 삶이 시작되었다. 한 발짝만 먼저가자. 그것이 내 모토였다. 내가 아이보다 한 발자국만 먼저 가자. 그것을 할 수 있잖아. 대단한 지식은 없어도 아이보다 하나는 먼저 할 수 있으니 그게 나의 힘이다. 잘난 척하지 말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아는 것은 안 다하자. 모르는 것은 같이 알아보면 될 일이다. 그런 생각이 홈스쿨링의 문턱을 낮추는 작용을 했다. 한편 무식했으니 가능한 일이다. 무식하니 용감하게 선택했고, 무식하니 배우겠다는 생각부터 시작했다. 

 

나는 성향적으로도 심플하다. 복잡한 것은 내게 맞지 않는다. 너무 많은 고민이 있을 때는 중요한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당연히 포기해야 할 게 보이고, 놓아야 할게 보인다. 홈스쿨도 그렇다. 친구관계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접어 둔 것이다. 소속감?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놓은 것이다. 

 

이 선택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한가지한 가지 생각이다. 자녀 교육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말이다. 맡기지 말자! 자식 교육을 외주 주지 말자. 그 한 가지가 이 좁은 길로 나의 발걸음을 옮겨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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