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떻게 배울까? 과연 우리는 지식을 아이에게 넣을 수 있긴 한 건가? 내 옆에 앉아 있지만 전원을 꺼버린 아이를 보면서 나는 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회초리도 들어보지만 그 전원은 아이가 켜지 않으면 절대 킬 수 없다. 아이는 왜 전원을 껐을까? 왜 배우기를 거부할까? 부모이면서 선생님이어야 하는 홈스쿨 부모들과 자녀이면서 학생이어야 하는 아이들의 기싸움은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부모가 이기는 경우는 대부분 권위를 가장한 강압적인 훈육일 것이고, 아이가 이기는 경우는 대부분 부모의 포기일 것이다. 둘 다 별로다.
홈스쿨러 앞에 도사리는 거대한 수렁
홈스쿨러가 빠질 수 있는 수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위험한 것은 지성과 인성을 겸비한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려고 하는 과대망상이다. 집에 데리고 있으면 학교 대신 그것을 마치 내가 어떤 뾰족한 수를 부려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에 빠지기 쉽다. 많은 독서를 통해 그것은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 오해는 금물! 그러한 목적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훌륭하다. 위험한 것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착각과 그리로 아이를 소몰이하듯 몰아치는 그것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아이는 절대 내 마음대로 안된다. 야속한 말 같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이상향대로 자라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내가 자라나며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 반감과 반항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만 계산해 보아도 알 일이다. 하지만 바람둥이 남자를 가정적으로 만들수 있을 것 같은 과대망상이 여기 자식 교육에도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완벽한’이란 단어는 그저 방향성일 뿐이지 아이를 몰아 그곳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야망의 목적지는 아니란 뜻이다. 솔직히… 나 역시 그 수렁에 빠졌고 빠져나왔고, 다시 빠지길 반복했던 것 같다. 부모의 욕심이란 씹다버린 껌과 같이 손끝에 들러붙어 떼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지만 알고 있자. 나의 욕망이 언제든지 아이를 덮쳐버릴 거대한 드래곤같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주의할 것이다.
공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이러한 장황한 경고를 날리는 이유는, 우리가 공부에 있어서는 재산의 반도 털어넣을 수 있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통틀어 이야기하지만 사실 학습에 국한된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아이의 인성을 위해서 사교육비를 수 십, 수백만 원 사용하거나, 성품 교육을 위해서 유학을 보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못 봤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할 수 없지만… 아주아주 드문 일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또한 인문학 공부라는 것도 들추어 보면 학습의 향상과 논술을 위한다거나, 소위 학습 천재를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는 학습에 있어서는 되기만 한다고 생각하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열정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부로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아보았기 때문에 그럴것이다. 나쁘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그것도 어떤 모양의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한 마디로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가격 대비 남는 것이 별로라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지치고 힘들고 부모는 돈은 돈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너덜너덜 해지기가 쉽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아이는 스스로 교육시킨다
홈스쿨을 하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아이는 스스로 교육시킨다. 티비에 나오는 엄친아는 하나도 예외 없이 스스로 하는 아이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의 스케줄링과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아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할 일은 거기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님들이 흥미의 문을 닫아버린다. 어려서는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지 슬슬 말 수가 줄어들고 의욕이 없어 보이지 않은가?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어떤 것에도 의욕이 없어 보이지 않은가?! 꼭 과로하고 퇴근한 부장님의 삶처럼 아이의 삶이 그렇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것이 흥미의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흥미의 문을 닫을까? 무엇이 닫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길 바란다. 부모는 끊임없이 아이를 관찰해야 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아이에 맞게 주어야 할 것과 빼야 할 것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질리지 않게 해야 하고 아이의 입에서 스스로 하겠다는 말이 나오게 해야 한다. 거기에는 당근과 채찍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부모는 지혜로워야 한다. 힘든 구간에서는 힘을 주어야 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구간에서는 함께 공감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교육은 알맹이는 빠지고 수박의 겉만 햝는 식의 교육이라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모양만 따라 해 본다. 그것은 아이에게 얕은 흥미만 일으킬 뿐이다. 실제 그것에 흥미를 느껴 진지하게 다가간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구간을 만나면 훈련되지 않은 아이들은 도망가 버린다. 포기해 버린다. 왜? 왜 그런가? 체험에 익숙한 아이들은 그 안에 인내해야 하고 꾸준함으로 버텨야 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흥미를 닫는 또 하나는 주입식 교육이다. 아이들은 매일 책상에 앉아 선생님이란 작자가 하는 말만 듣고 있다. 매일매일 말이다. 50분은 선생님이 떠들고 10분은 쉬는 시간이라고 준다. 뿐만아니라 수업은 흥미를 느끼려고 하면 끝난다. 무엇을 깊이 있게 배울 수가 없다. 탐구하고 고민하는 시간은 필요 없고 너는 앉아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라는 식이다. 너의 생각 따위는 내놓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교육에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체험 교육이다. 하지만 얕은 교육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까지가 공교육에 비판으로 들리는가? 한편 맞다. 나는 그래서 공교육에 발을 드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은 그런 똑같은 모양의 교육을 홈스쿨러들이 가정에서 차리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무엇 때문에 공교육을 포기했는지 각자의 이유와 목적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 우리는, 내가 아이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교육에 아이를 맡겨버린 사람보다 강하다. 그래서 애써 아이를 학교화 시킨 홈스쿨을 시키려 한다. 너무나 많은 부모들이 수박 겉핥기 같은 체험을 떠돌아다니며 만족감을 느끼는지 모른다. 자기만족일 뿐이다.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훈련하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공교육의 대안으로 나온 수많은 대안학교도 전혀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대안이 일반 학교보다 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면 어느 정도 그것을 달성한 대안교육이 존재하긴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학교에서, 가정에서 흥미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초고속 승진해서 과로한 과장님이 된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열정도 없이 그저 쉬고 싶은 과장님 말이다. 이런 어린이 과장님들의 흥미를 어떻게 되살려 줄 수 있을까? 어떻게 스스로 교육시키는 아이로 부활하게 할까??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자 (디톡스 기간 필요)
아이의 스케줄을 객관적으로 보자. 여기에 맹점은 부모는 그 스케줄을 감당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남편은 쉐프다. 자기 매장을 열고는 나도 가서 도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게 됐다. 그런데 이게 그랬다. 이전에도 남편이 수고하고 있고 힘들겠다 생각했지만, 체험 삶의 현장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남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정말 몰랐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냥 힘들겠지… 정도와 경험치로 알게 되는 것은 완전하게 달랐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내 마음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스케줄이 ‘힘들겠지’ 정도로 생각한다. ‘다들 그렇게 하잖아’라는 굴레도 씌우기 일수다. 하지만 하루에 두시간씩 앉아서 초집중으로 공부해 보길 바란다. 아이들에게만 체험을 강요하지 말고 본인도 그렇게 해보길 강권한다. 그렇게 공부하고 나면 다른 것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AI 대하 듯한다. 어른이라도 지친다. 아이에게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 뭔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심해 미치겠어야 창의적인 놀이가 떠오르듯이 말이다.
아이의 시간을 부모가 학교가 빼곡히 채워놓고는 자기주도 학습을 하라고 말한다. 진짜 웃긴 것은 정해진 숙제를 아이 스스로 꺼내서 하면 자기 주도 학습이라 말하는 것이다. 뭐가 자기 주도인가? 그 시간에 스스로 책을 꺼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기 주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의 흥미와는 관계없이 짜인 스케줄에는 그 정도가 자기 주도인 것이 맞다. 스케줄링은 아이의 몫이다. 무엇을 공부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단, 기초 학습에 대한 부분이 여기에 언급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글은 읽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교육시키는 학습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교육은 필요하다. 다음 포스팅에는 기초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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