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이 유럽을 휩쓸자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멈춰지기도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영토 문제로 오랫동안 전쟁을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자 잠시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이 지나가자 전쟁은 다시 시작됐고 그 길고 지루한 전쟁이 100년 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100년 전쟁이라 부릅니다.
헨리 5세
영국의 왕위에 오른 헨리 5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끝내려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는 프랑스 영토 안에 영국 땅을 찾으려 했어요. 그의 고모였던 이사벨라는 프랑스의 공주였는데 영국인과 결혼했죠. 그래서 헨리 5세는 조카인 자신에게 상속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 국왕 샤를 1세는 그 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샤를 6세의 아들은 사신을 통해 테니스 공 몇 개와 함께 무례한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어린애 같이 유치한 것에 시간을 보내지말고 테니스나 치라고 말이에요. 이러한 치욕을 참을 수 없었던 헨리5세는 프랑스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잇단 패배를 맛보아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겨울이 다가왔어요. 그래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한 후에 다시 공격하려 계획했지만 프랑스는 영국군을 완전히 박살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쟁쿠르 전쟁
어쩔 도리가 없이 아쟁크루 벌판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수적으로 밀리고, 추위와 굶주림은 물론 공포에 사로잡힌 군사들을 이끌고 헨리는 싸워야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모든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이 승리했습니다. 이 아쟁크루 전투는 백년 전쟁에서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헨리는 프랑스의 영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프랑스 국왕 샤를은 딸 카트린을 헨리의 아내로 주어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은 후, 헨리가 프랑스 왕위를 물려 받는 것도 승인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헨리는 샤를 6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프랑스 왕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두달 후 샤를 6세도 사망했는데요, 헨리 5세와 카트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한살이라는 나이에 프랑스의 왕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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