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다

뽀선생Kimppo 2021. 10. 2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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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투르크 인들은 아시아 주우 일대를 떠돌던 유목민 집단이었습니다. 몽골 군대가 아시아 전역을 정복해 나가자 새로운 터전을 찾아 서쪽으로 떠났고 그 과정에서 이슬람 상인과 거래를 했고, 그들의 코란을 듣고, 결국 이슬람교도가 되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 인들은 비잔틴 제국 국경선이 있는 곳에 정착해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며 살게 되었죠. 

 

확장되는 오스만 투르크

이슬람교도 집안에서는 보통 아들들을 이교도를 정벌하는 병사로 키웠는데 그들을 '가지 ghazi'라고 불렀어요. 이슬람교도가 늘어날수록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도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들의 국왕은 술탄이라 불렀고 술탄의 지휘 아래 군사들은 비잔틴 제국을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도시들은 함락했고, 비잔틴은 그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어요. 결국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비잔틴 황제에게는 콘스탄티노플만 남게 되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으로 둘러싸인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죠. 투르크 병사들과 연이은 실패를 맛봐야만 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다

오스만 제국은 확장되고 비잔틴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위에 오른 새로운 술탄은 '정복자 메메드'였습니다. 그는 머리가 아주 좋은 전사였어요. 그는 비잔틴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친교를 맺자고 하면서도 전쟁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메메드는 거대한 대포를 만들고, 화약을 준비하고, 용병들을 고용했습니다. 용병이란 돈을 주고 고용한 병사들을 의미하죠. 메메드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비잔틴 황제는 사신을 보냈지만 메메드는 그를 죽였고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메메드의 군대는 서쪽으로 진군했는데 3면이 바다인 비잔틴 제국에 뭍으로 진군할 곳은 서쪽뿐이었습니다. 메메디는 비잔틴 황제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지만 수적으로 한참 열세였던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오스만 제국은 성벽을 향해 대포를 쐈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대포만으로는 철옹성 같은 그 성벽을 무너트리지 못했습니다. 

 

 

메메드는 전함으로 도시를 포위했고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어느 날 비잔틴 병사들은 눈으로 보고 믿지 못할 일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들이 땅 위로 다니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메메드는 전함마다 수백 가닥의 밧줄을 매어 수천 병사들과 소를 동원하여 배를 움직였고 그 배들을 서쪽 벽을 지나 북쪽 벽 앞의 바다까지 끌고 갔습니다. 약 70척의 배가 골든 혼의 물 위에 떴고, 골든 혼의 입구만 지키던 비잔티움 전함들로부터 꽤 먼 거리가 떨어진 위치였어요. 철통 수비로 들어갈 수 없었던 북쪽 성벽 쪽까지 포위한 오스만 제국은 이제 정말 사방에서 공격을 퍼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꽤 긴 전투 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메메드'는 기독교 성당이었던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교의 예배당인 모스크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 대신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바꿨어요. 이스탄불이란 그리스어로 '도시를 향해'라는 뜻으로 그곳을 탐냈던 오스만 투르크 인들의 구호가 되었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로마 제국의 철옹성이 이슬람 제국에 의해 무너진 날, 술탄 메메드는 이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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