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

뽀선생Kimppo 2021. 9. 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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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남쪽 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중해, 대서양과 접해 있고 북동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으로 유럽의 다른 곳과 연결됩니다. 지브롤터 해협 너머로 아프리카와도 접해있죠. 이번 시간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와 그곳에 거주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들을 해보겠습니다. 

 

 

기원전 15세기에 세워진 항구 도시, 카디스

기원전 15세기 경 페니키아 인들을 중심으로 한 해상 교역이 활발해지자 중간에 거점항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서유럽 최초로 세워진 것이 이베리아 반도의 카디스였습니다. 지브롤터 해협의 대서양 쪽 관문에 위치한 항구로, 작지만 당시에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죠. 이 지역 이베리아 반도는 아프리카와 마주 보고 있는 교통의 허브였습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아메리카 교역의 75%를 카디스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상업에 앞서갔던 페니키아 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원주민에게 화폐, 알파벳, 금속 제작 기술, 직조 기술 등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이베리아 반도는 문명이 일찍 발단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10세기 솔로몬 왕 시대에 유대인들은 ‘다시스 상선대’를 운용하며 이베리와 반도와 대규모 교역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베리아반도 카디스 항구


로마제국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

로마제국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며 이베리아 반도까지 차지하게 되는데요, 로마에 이베리아 반도는 서유럽으로 팽창해 나가기 좋은 고지였습니다. 그곳에서 로마의 황제가 4명이나 배출되는데요, 우리가 잘 아는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등은 이베리아 총독 출신으로 로마의 황제가 된 사람들입니다.

4세기 경, 유럽 여러 나라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요, 로마가 쇠퇴하자 반달족과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왔고 반달족은 서고트족에게 밀려나 북아프리카에 반달 왕국을 세우고 서고트족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서고트 왕국을 세웠는데, 그들의 지배는 711년 이슬람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이어집니다.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

 

이슬람교가 등장한지 백 년도 되지 않아 이슬람 왕국은 막강해졌고 빠른 속도로 영토를 넓혀가며 이슬람 왕국을 세워갔습니다. 북아프리카에 이슬람의 세력이 강해지자 이슬람 군은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을 무너트리고 이베리아 반도를 차지하며 8백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슬람은 이베리아 반도에 있었던 로마시대의 수로와 관개시설을 복구하고, 농업을 전파하여 지역의 농업을 발달시켰습니다. 지역은 점점 더 잘 살게 되었고 부가 기반이 되자 학문과 예술도 발달하게 되었지요.

무슬림들은 기독교도들을 탄압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었어요. 이슬람의 코란과 구약에는 고통점이 있고, 이슬람교가 유대교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왕국 초기에는 그들의 세력이 크지 않아서 기독교도들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르도바 대모스크 The Great Mosque of Cordoba 


8세기 이후, 지중해상의 섬들은 이슬람의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되고 지중해는 이슬람의 바다가 됩니다. 유럽인들은 꼼짝없이 내륙에 갇히게 되었고 무역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이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이슬람이 주도하는 대외무역이 활발했죠. 그 중심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슬람과 기독교 국가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진영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이 종교 전쟁과는 관련이 없었어서 양쪽을 왕래하며 무역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이슬람 지역에서 이교도와 접촉해야 하는 모든 외교업무도 유대인들이 맡아서 했죠. 유대인들은 내륙 곳곳에 퍼져 살고 있는데 유대인 디아스 포라를 이용해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 왕조의 등장

세파르디는 유대인 이산 이후 흩어진 유대인들 중에서 이베리아 반도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자손들을 칭하는 이름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유대인의 도시들이 세워졌고, 그곳은 부유하고 발달했으며 유대인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1세기 초부터 우마야드 왕조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하면서 이슬람 세력은 북아프리카로 밀려나게 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 세력이 스페인 지역으로 침략해 들어옵니다. 그들의 수장 알모하드는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이슬람 왕국을 유지하며, 이교도들을 무참히 쓸어버리는데 이때, 유대인들의 지역과 공동체는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들은 개종을 하거나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거나를 선택해야 했죠. 다행히 북부 스페인 지역의 기독교 국가는 종교에 관용적이어서 유대인들을 받아들여주었습니다.

300년 간의 짧은 평화를 만끽한 유대인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수난을 겪게 됩니다. 코르도바에서 수많은 유대인 학자들은 처형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형성


셀주크 투르크의 실크로드 장악


1037년 셀주크 투르크족의 침공으로 중동의 이슬람 왕국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후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의 왕이 비잔틴 황제를 생포하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셀주쿠는 중국, 인도의 육로와 지중해를 잇는 실크로드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셀주크에 반한 이슬람 근본주의자 세력들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들은 북서 아프리카에 있던 기독교 공동체를 전멸시키고 이베리아 반도에까지 들어오게 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 알모하드 왕조는 유대인을 강하게 탄압하는데요, 그들에게 무역 활동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몸에 노란 표시를 해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알아보고 싶게 표시되어야 했고 머리에 두르는 터번도 노란색으로 구별해야 했죠. 견딜 수 없던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 북부로 피신했고, 유대인들이 떠나자 이슬람 왕국의 상업적 기반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본 포스팅은 홍익희 선생님의 [유대인 이야기]의 일부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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