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십자군 전쟁(3)- 제5차 십자군, 제6차 십자군

뽀선생Kimppo 2021. 10. 1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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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십자군 전쟁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가 참가했고 아크레 상륙하자마자 아이유브 왕조의 대군과 접전하며 팔레스타인 탈환에 실패합니다. 1218년부터 1년간 예루살렘 왕과 프랑크 시리아군은 아이유브 왕조의 수도 카이로를 공격하고 나일강 어귀의 다미에타를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은 중재를 신청하고 다미에타와 예루살렘을 교환하자 제의했어요. 그러나 십자군은 이 제안을 거절했고 카이로로 진격했지만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유브 왕조
아이유브 술탄국은 쿠르드족이 이집트에 건설한 수니파 이스람 술탄국입니다. 12-13세기 이집트, 시리아, 북이라크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1169년 삼촌 시르쿠와 조카 살라흐 앗 딘이 이집트를 정복 하고 시르쿠의 형제이자 살라흐 앗 딘의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아이유브 왕조가 되었습니다. 삼촌 시르쿠가 사망하자 살라흐 앗 딘은 이집트를 장악하고 1169년 다미에타를 침공한 십자군을 몰아냈습니다. 1171년 파티마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알아디드가 죽자 파티마 왕조를 폐위시켰고 1174년 장기 왕조의 자신의 주군 누르 앗 
딘이 죽은 후에는 다마스쿠스를 복속하며 이슬람의 최강자가 되었습니다. 살라흐 앗 딘은 십자군과의 전쟁을 계속하여 예루살렘을 탈환하였고 예전에 이슬람 영토를 회복하기도 했죠. 하지만 1193년 살라흐 앗 딘이 죽자 아이유브 왕조는 후계자들에게 권력이 나뉘며 분열되었고 힘도 그만큼 약해졌습니다. 아이유브 왕조가 완전히 힘을 잃게 되자 노예 출신의 맘루크 왕조로 대체되고 맙니다. 

 

 

6차 십자군 전쟁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과 십자군 파병을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 미루기만 했습니다. 화가 난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황제를 파문했고, 프리드리히는 파문 소식에 억지로 십자군을 파병합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싸움대신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과 교섭하였고, 예루살렘 일부의 통치권을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모스크는 여전히 무슬림의 관리하에 두고, 십자군 군대를 상주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측 모두에서 이를 환영하지 않았죠. 프리드리히는 전투를 하면 힘이 약해진 이슬람을 가볍게 이기고 성지를 완전히 탈환할 수 있는데도 싸우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고, 술탄은 성지를 돈을 주고 팔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프리드리히는 교황의 군대에 공격을 받았지만 간단히 격퇴했어요. 교황은 십자군을 다시 선동하여 파병하였고 별다른 소득 없이 귀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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