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근대편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43 멕시코의 독립과 미국

뽀선생Kimppo 2022. 4. 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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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에서는 공화국에 대한 반란이 일어납니다. 미국 이주민들과 뉴스페인 사이에 맺어진 협약으로 그곳에는 미국인 거주자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을 ‘엠프레사리오’라고 불렀습니다. 멕시코가 독립을 하고 공화국이 된 뒤, 멕시코 정부는 미국 거주자들인 엠프리사오를 계속 인정해 주었습니다.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 들어온 미국인들은 그곳을 도시로 개발했고, 그들이 내는 세금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멕시코 땅에 사는 미국인들은 멕시코 시민이어야 하고 종교도 그들의 국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반란 - 엠프레사리오

시간이 지나면서 멕시코 내에 엠프레사리오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점점 멕시코 법을 따르거나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일들을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멕시코는 노예 제도가 금지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멕시코로 이주해 오는 미국인들은 노예들을 데리고 오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멕시코는 미국인들의 이주를 금지했습니다.

1829년 산타안나가 스페인군 침공을 격퇴하고 있는 그림 /위키피디아 출처 : 아틀라스뉴스

한편, 멕시코시티에서 선출된 산티 안나는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독재 정치를 시작했어요. 그는 멕시코 법을 잘 따르지 않은 텍사스 주에 총기 소지를 금지시켰죠. 텍사스 사람들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리슨이라 불리는 무장 수비대를 만들었고 곧, 멕시코 군대와 싸움이 일어났어요. 총과 대포로 무장한 텍사스 주의 개리슨은 샌안토니오와 곤잘레스 시를 점령했고, 투표를 통해 샘 휴스턴을 군대의 장군으로 선출했어요. 이제 텍사스 주의 군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산타 안나는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텍사스 주의 군대는 200명이 채 되지 않았고, 산타 안나의 군대는 4천 명에 육박했죠. 멕시코 군대는 텍사스 군대를 포위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않았어요. 싸움이 시작되자 텍사스 군대는 전멸했지만 멕시코 군대도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때, 텍사스 전역에서 산타 안 나와 싸우려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났고 산타 안나는 샌안토니오를 점령하는데 만족하고 돌아서야 했죠.

 

포로가 된 산타 안나

화가난 산타 안나는 북쪽으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얕잡아 본 멕시코 군대는 패하고 말았고, 포로로 잡힌 산타 안나는 텍사스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워싱턴으로 압송된 산타 안나는 미국의 앤드류 잭슨 대통령을 만났고 텍사스를 미국에 팔라는 제안을 받게 됩니다. 산타 안나는 그 제안에 바로 동의했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텍사스를 미국에 넘기고 싶지 않았어요.

1836년 샌화킨토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산타안나가 부상당해 누워있는 샘 휴스턴 장군에게 항복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출처 : 아틀라스뉴스

한편 독립을 얻어낸 텍사스 또한 군대를 만들고 유지할 비용도 없을만큼 가난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얻어낸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텍사스가 한 주로서 미합중국에 편입되길 바랐어요. 이 일은 10년간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결국 텍사스는 미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멕시코는 미국이 텍사스를 빼앗아 갔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은 텍사스뿐만 아니라 멕시코 전체를 가지고 싶어 했죠. 젊은 의원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 전쟁을 반대했어요.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비판했죠. 하지만 대다수의 의원들은 멕시코를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고 싶어 했어요.

 

미국은 전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고, 멕시코 의회는 미국의 제안을 빠르게 받아들였어요. 미국은 값을 지불하고 텍사스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의 땅을 받았습니다. 몇 년 후엔 뉴멕시코 주를 사들였습니다. 미국은 이제 북아미리카 대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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