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세계 곳곳에서 자유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아이티 섬이라 불리는 샘도밍그 섬에서도 그 자유의 바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흑인 노예로 살고 있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은 결국 아이티 독립을 가져오게 됩니다.
생도밍그 섬의 반란
생도밍그는 카리브해 북쪽, 플로리다 주와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섬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했고 사탕수수를 재배하여 설탕을 북아메리카에 팔고 있었죠. 생도밍그에서 생산되는 설탕과 커피는 점점 더 많이 팔렸고, 농장 주인들은 부유해졌어요. 이 섬에서 생산되고 있었던 커피와 설탕은 전 세계의 소비량에 절반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베르사유 궁정에서는 그 섬의 부유함을 시샘했습니다.
생도밍그에는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이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갖지 않길 바랬죠. 프랑스에서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지 3년 후 노예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농장 주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저택에도 불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자유인이 된 투생 루베르튀르는 전략도 없고, 목적도 뚜렷하지 않은 그 반란을 걱정스럽게 바라봤습니다. 투생은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었고, 병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는 더욱 조직적으로 생도밍그를 독립하고자 했습니다.
스페인은 생도밍그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그곳에서 프랑스 인들을 몰아내는데 힘을 합치겠다고 했고 투생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투생은 스페인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죠. 노예를 대하는 태도는 프랑스 사람이나 스페인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투생은 곧 스페인을 위한 싸움을 멈추고 프랑스 편에 서기로 결단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자유와 평등이란 사상이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일까요? 프랑스는 투생을 생도밍그 섬의 총독으로 세웠고 투생과 프랑스는 스페인 군대를 내쫓았습니다.
생도밍그는 전쟁을 치르며 폐허가 되었습니다. 투생은 그곳을 다시 일으키고 이전과는 다르게 통치했습니다. 농장 주인들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노예들의 인권을 보호할 것을 선언했어요.
그러나 나폴레옹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 총독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그 섬을 통해서 벌어들일 큰돈을 흑인에게 맡기기도 싫었죠. 곧 나폴레옹은 생도밍그를 재정복 하기 위해 군사를 보냅니다. 생도밍그는 수많은 프랑스 군대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항복한 생도밍그를 작은 농장에서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어요. 그는 알프스의 감옥으로 보내졌고, 곧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되돌려 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인 말라리아가 퍼지면서 프랑스 군대는 많은 군인들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그 사이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돌아갈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프랑스 군대와 맞섰고, 전염병으로 약해진 군대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04년 생도밍그 섬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 섬의 이름이 아이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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