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근대편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2 프랑스와 나폴레옹

뽀선생Kimppo 2022. 3. 31. 13:00
반응형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고 프랑스의 국민 공회는 ‘과두 정치’를 채택하기로 결정합니다. 과두 정치는 소수의 시민들이 국가의 통치를 맡는 것이죠. 곧 미국의 의회와 같이 원로원과 500인 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5명을 선출해 내각을 구성했는데, 이 내각이 프랑스를 통치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5명의 총재라고 부르고, 총재 정부라고도 합니다.

나폴레옹의 등장

이렇게 새롭게 구성된 내각의 첫번째 과제는 바로 오스트리아를 막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내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을 선택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게 했어요. 그는 이미 로베스피에르 때부터 이름이 알려진 자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로 진격했어요. 그곳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 오스트리아 군대를 몰아내면 프랑스는 안전해지는 것이었죠.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서 위대한 미술 작품들은 물론, 교회의 물건들도 약탈해 모두 루브르 미술관에 보냈어요. 그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가지고가 여전히 파리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다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진격했어요. 빈은 곧 항복하고 벨기에와 롬바르디아를 프랑스에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승리를 안고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내각은 그의 야망을 눈치챘고 그를 다시 영국에 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영국의 해군을 맞서 싸우기엔 나폴레옹의 군대는 지쳐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를 공격하자고 내각에 제의를 했죠. 이 제의는 받아들여졌고 나폴레옹의 부내는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도착해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점령합니다. 이때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을 쫓아 와 공격했습니다. 이 해전을 ‘아부키르 만 해전’ 혹은 ‘나일 강 전투’라 말합니다. 나폴레옹은 영국 해군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와 연락이 두절된 나폴레옹은 군대를 두고 프랑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실패로 끝났죠. 하지만 이 원정이 실패했는지 몰랐던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은 영웅 취급을 받았어요. 나폴레옹은 무장한 군인을 이끌고 원로원으로 갔고, 곧 권력을 쥐게 됩니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집정관의 자격으로 프랑스를 통치했습니다. 단 한 명 뿐인 집정관이었고, 그와 그의 ‘국가 위원회’를 통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황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법전’을 만들었어요. 그 법전은 근대 시민법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어서 후에 제정된 각 나라의 법전에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이 법의 요점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인데요, 이 법에서는 항상 고용인보다 주인에게 유리한 법이었고, 여성에게는 불리하다는 것이었죠. 또한 가톨릭 교회의 지지를 받기 위해 그들의 신앙과 예배 방식을 허용했습니다.

 

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권력을 꿈꿨고, 곧 그를 종신 집정관으로 추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을 만들었는데, 자신의 권력을 보장해주는 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종신 권력을 틀어진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영토 확장을 하고자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 땅을 모두 미국에 팔았어요. 그때 팔아버린 프랑스의 영토는 뉴올리언스, 아칸소, 미주리, 캔자스, 네브래스카 등과 캐나다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영토를 넓히려는 자가, 영토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다소 우습게 보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장군이었고 식민지를 개척하는 것과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는 일은 엄연히 다른 일로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긴 어렵다 판단한 것이었죠. 미국은 이 ‘루이지애나 구입’이라는 거래를 통해 하루아침에 두 배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군비를 마련한 나폴레옹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병사를 영국으로 보낼 널판지 거룻배들을 만들었습니다. 전함이 먼저 영국을 공격하며 길을 트면, 거룻배로 병사들을 영국 땅에 실어 나를 생각이었어요. 영국 함대의 사령관은 넬슨 제독이었습니다. 나폴레옹과 나일 강 전투에서 맞섰던 인물이죠. 전투가 시작되자 해양 강국이었던 영국은 프랑스의 해군을 쉽게 꺾어버렸고, 군인들을 실어 나를 거룻배는 바다로 나가보지도 못한 채 전쟁은 끝이 났죠. 이때 넬슨은 프랑스 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전투를 ‘트리팔가르 해전’이라 부릅니다. 이 전쟁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그 기세가 꺾이고 말았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