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투르크의 황제도 러시아의 표토르와 같이 자신의 제국을 서양처럼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오스만 트루크의 땅이 지금의 이라크에서부터 오스트리아 근처의 지역가지 확장해 있었을 때에, 그들은 유럽의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그들처럼 되려고 했어요.
오스트리아 빈을 공격한 오스만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사람들은 빈을 둘러싸고 점점 그들을 점령하기 위해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살고 있는 서양의 심장부였죠. 물론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받아 신성 로마 제국은 물론 귀족들은 그 도시를 빠져나갔지만 말이죠. 오스만의 군대는 땅굴을 파서 빈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빈의 시민들은 두려움에 쌓여 있는 동안 프랑스, 폴란드, 독일이 군대를 보냈습니다. 유럽 연합군이 도착하자 빈을 오랫동안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의 군대는 줄행랑을 쳐야 했습니다.
이 공격을 마지막으로 오스만 투르크는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헝가리 외각까지 밀려났어요. 오스만 제국의 서쪽을 빼앗기게 된 것이죠.
아흐메트 3세
오스만의 술탄 아흐메트 3세는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는 사람 중 하나였어요. 그는 특히 네덜란드의 튤립을 좋아했어요. 튤립은 중앙아시아에서 자라는 꽃이었는데, 오스만 투르크의 상징도 이 야생 튤립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튤립을 가져다가 네덜란드 튤립으로 만들었어요. 아흐메트는 다시 그 네덜란드 튤립을 들여왔습니다. 아흐메트는 수많은 튤립을 그의 정원에 심고 즐겼죠. 아흐메트의 튤립 사랑 때문에 그는 '튤립 왕'으로 불리고 그가 집권한 시기를 '튤립 시대'라고 부른답니다.
아흐메트와 그의 수상이었던 이브라임 파샤는 제국의 궁정을 유럽처럼 꾸몄습니다. 파샤는 유럽의 여러 도시에 대사를 보내 유럽의 예술과 과학을 배워오게 했어요. 그리고 인쇄술도 들여 오게 되었죠. 그들은 여러 가지 책들을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 신앙에는 한치의 타협도 보지 않았죠.
이러한 아흐메트의 서양 따라하기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그의 근위대장은 모반을 일으켜 그를 끌어내리고 그의 조카 마흐무드 1세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게 됩니다.
마흐무드 1세가 황제가 되자, 서양을 따라하기는 멈추었지만 그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발칸 반도의 나라들을 하나씩 잃기 시작했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터키라고 부르는 그 영토만이 남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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