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에게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물려주었을 때, 네덜란드에는 침묵자 빌렘이라는 귀족이 있었답니다. 그는 '오렌지 공'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프랑스의 오랑주(영어로 오렌지)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죠. 빌렘은 펠리페보다 6년 늦게 태어났어요. 펠리페가 궁정에서 살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빌렘이 10대 때에 프랑스 남부 지방과 네덜란드의 어느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두 곳 모두 카를의 제국 안에 속해 있었죠.
카를과 빌렘
카를은 빌렘이 장차 강력한 귀족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를 궁정으로 데려와 교육시켰습니다. 카를은 그가 부모와 같이 프로테스탄트로 자라나 가톨릭에 적대적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빌렘은 자라 갈수록 카를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빌렘은 성품이 무척 좋았기도 했고 카를에게 충직한 신하이기도 했습니다. 이어 카를의 아들 펠리페가 네덜란드를 물려받았을 때, 빌렘에게 그 땅의 일부를 맡겼습니다. 빌렘이 맡은 지역은 땅이 수면보다 낮아서 조수가 밀려오거나 거센 파도가 일 때마다 물에 잠겼던 곳이었어요. 그곳 사람들은 흙벽을 쌓아 물에 잠기는 것을 막아 보려 했습니다. 그 흙벽을 '다이크'라고 해요. 실제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지만 늘 위험이 함께 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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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의 무서운 계획
빌렘은 날이 갈수록 펠리페의 통치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 국왕을 만난 빌렘은 펠리페의 끔찍한 계획을 듣게 됩니다. 그것을 바로 네덜란드 안에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모두 죽여 없애 그들의 신앙을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는 거였어요. 빌렘은 카를의 노력에도 여전히 프로테스탄트 신자였기 때문에 그 소식에 무척 놀랐지만, 가톨릭 교도인 프랑스 국왕 앞에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빌렘은 '침묵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백성들을 어떻게 보호해야할지 무척 고민했습니다. 그때 한 무리의 백성들이 펠리페의 통치에 항거하여 무장봉기를 일으켰어요. 그들은 가톨릭 교회들을 파괴하고 성상들을 부수었지요. 그 소식을 들은 펠리페는 알바 공작을 보내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죠. 알바는 반란군의 지도자들을 속이고 만나 그들을 무참히 살해했고, 빌렘의 영토도 모두 몰수당했어요. 이제 빌렘은 왕의 적이 되었죠.
그 후 10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땅을 점령한 스페인 군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알바 공작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천 명이나 처형했고 그의 군사들은 네덜란드 주민들을 마구 죽이고 다녔어요. 한편, 독일로 도망갔던 빌렘은 군대를 일으켜 네덜란드로 진격했습니다. 그들은 곳곳에 흙벽을 무너트리고, 바닷물이 흘러넘치면 배를 띄워 스페인 군대를 포위해 갔죠. 네덜란드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빌렘이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습니다. 마침내 네덜란드 북부의 일곱 개 지방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고, 빌렘을 왕으로 추대했어요. 그는 네덜란드의 빌렘 1세가 되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의 국왕인 빌렘 알렉산드르 국왕은 빌렘의 14대 손자랍니다.
메리 여왕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네덜란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수많은 지역에서 두 종교는 싸움을 일으켰어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지금은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이지만 17세기 초, 스코틀랜드는 독립된 국가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태어난 지 5일 만에 왕국을 물려받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어린 딸을 대신해 통치를 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기즈 공작의 딸이기 때문에 기즈의 메리라고 불러요. 섭정을 맡게 된 기즈의 메리는 훌륭한 통치자였어요.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딸 메리를 프랑스로 보내 가톨릭 신앙을 지키게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스코틀랜드는 프로테스탄트 권세가들이 많아, 앞으로 왕이 될 메리를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키우고 싶어 했죠. 기즈의 메리는 여전히 스코틀랜드에 남아, 섭정왕 노릇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스코틀랜드에 프로테스탄트들은 그 세력이 점점 더 커져갔죠. 프랑스에 보내진 메리는 열여덟 살이 되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왕위를 되찾기로 결심하죠. 그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을 박해하거나 그들의 신앙을 금지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녀는 프로테스탄트였던 로드 단리와 결혼을 하면서 그녀의 통치를 이어갔죠.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지, 단리는 메리의 권력을 탐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권세가들과 힘을 합쳐 메리를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계획했죠. 그리고 스코틀랜드 땅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몰아낼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메리는 이 음모를 알아차리고 다른 성으로 도망쳐서 자신의 편인 군대를 모았습니다. 이미 계획이 들통난 프로테스탄트들은 줄행랑을 쳤습니다. 단리는 권세가들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려고 작정을 했고 메리도 그것을 믿은 것처럼 보였어요.
메리가 그의 아들을 낳은 얼마 후, 공교롭게도 단리가 머물고 있던 작은 주택에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단리는 죽은 체 발견되었지요. 단리는 나무에 목이 매달린 채 죽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누가 그런 일을 꾸몄는지 알 수 없었죠. 단지, 많은 사람들이 메리가 꾸민 짓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답니다.
메리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힘을 가지고 있던 프로테스탄 권세가들은 스코틀랜드를 좌지우지하려 들었고 메리의 젖먹이 아들 제임스가 왕이되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메리는 군대를 모으려 했지만 이미 지지가 약해진 그녀의 편에 서는 병사들을 찾기 어려웠어요. 권세가들은 메리를 지방의 어느 성에 가두었고, 그녀에게서 강제로 아들 제임스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서명을 받아냈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아들 제임스는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스코틀랜드 국왕이 되었어요. 메리는 영국으로 도망쳤어요. 사촌 언니였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거죠. 하지만 자식이 없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계승자인 메리를 무턱대고 환영할 수만은 없었죠. 그래서 그녀가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영국 북부의 저택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 후 19년 동안 메리는 감옥이 아닌 감옥에 갇혀 사는 신세가 된 것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메리가 가톨릭 신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가 곧 영국의 여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고, 그것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 여왕은 더 이상 메리를 살려둘 수 없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명령으로, 차가운 겨울 메리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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