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 세계의 많은 곳을 통치했습니다. 근대로 접어든 세계에는 펠리페 2세의 십자가 깃발괴 페르디난트의 쌍독수리 깃발로 뒤덮여 있었어요.
카를 5세
1500년대 네덜란드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의 작은 나라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였고, 또 다른 할아버지는 스페인 국왕이었습니다. 그 집안에는 왕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카를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는 어린 나이에 네덜란드의 통치가가 될 수밖에 없었죠. 열여섯 살에는 스페인 통치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번엔 스페인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열아홉 살에는 독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독일 국왕의 자리도 차지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카를은 세 나라의 국왕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자리도 탐냈답니다.
샤를마뉴
로마 시대로 시간을 되돌려 돌아가 보면, 평화롭던 로마가 지속되다가 북쪽으로부터 야만인이 쳐들어 오면서 로마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500년간 유럽은 전쟁으로 몸살을 앓게 됩니다. 그러다가 프랑크 왕국에서 위대한 국왕이 등장했는데 그의 이름이 샤를마뉴였습니다. 샤를마뉴는 독일 땅을 정복하고, 법을 공포하기도 했죠. 그의 왕국은 힘을 더 해 갔습니다. 그러자 기독교의 우두머리인 교황은 샤를마뉴를 '로마 황제'라고 선포했습니다. 이미 로마 제국이 멸망했는데, '로마 황제'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깁니다. 그것은 고대 시대의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유럽을 다스려 줄 것과 기독교 신자인 샤를마뉴의 통치를 통해 유럽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기대 때문이었죠.
그래서 카를 5세 역시 샤를마뉴와 같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선포할 교황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교황은 이미 너무나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카를 5세를 더욱 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죠. 왜냐하면 그에게 그 큰 힘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교황의 힘은 약해질게 뻔하니까요. 그래서 교황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힘을 합해 카를 5세와 싸우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카를 5세도 군대로 교황의 고집을 꺾고자 했습니다.
카를 5세와 교황의 권력 싸움
카를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내세워 교황과 싸우려 준비했어요. 이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 교회는 부패했다고 믿고 새로운 기독교 교회를 세우려는 무리였으니 당연히 교황과 맞서 싸울 때 나서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카를은 프로테스탄트들을 추방하고 감옥에 가두며 박해해 놓고도, 필요하니까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군대를 고용해서 카를의 군대와 함께 로마로 쳐들어 갔습니다. 로마는 포위당했고 교황과 그의 군대는 도시 안의 요새에 숨었고 그곳에서 여덟 달 동안 갇혀 지내게 되었어요.
그런데 카를은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며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군대가 자기의 명령도 없이 멋대로 행동했다는 것이죠. 이 사건으로 카를은 결국 교황에게 신성 로마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카를은 모든 것을 다 이룬 것 같았지만 그는 왕위에 오른 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가난해졌어요. 전쟁에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신자들 사이의 싸움도 끊이지 않았죠.
카를 5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지 24년 만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났어요.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는 그의 아들 펠리페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나머지 영토를 동생 페르디난트에 주었어요. 페르디난트는 형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칭호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당시 인기가 많았던 동방견문록을 읽고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도착할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포르투칼, 영국, 이탈리아의 여러 국가들에게 지원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지요. 그러다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후원으로 항해를 떠나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콜롬버스는 그곳을 인도라고 믿었지만요. 그래서 남아메라카 땅은 스페인 령이 된것입니다. 그 이후 스페인의 정복가들은 콜럼버스가 찾은 길을 따라 인도에 가보고 나서야 그곳이 인도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곳에는 인도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 있었죠. 바로 황금이었어요.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에게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품들을 내주었죠. 스페인 왕은 더 욕심이 났습니다. 남아메리카에 있는 금을 스페인으로 가지고 오고 싶었죠. 그래서 정복자들과 ‘엥코미엔다’라고 하는 특별한 계약을 맺게 됩니다. 정복자들은 누구나 남아메라카로 가서 얼마든지 금을 가져와도 좋다는 내용의 계약이었습니다.
남아메리카는 이미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죠. 그렇지만 스페인은 그곳이 자기네 영토라고 우겼는데, 그 이유로 든것이 그곳에 사는 부족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답니다. 그들의 이론으로는 모든 땅은 교황의 것이었고, 그 교황은 그 땅을 스페인 땅이라고 선언했다는 것이지요. (거의 날강도 수준이죠 ㅠㅜ) 하지만 엥코미엔다를 반대하는 기독교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광산을 만들어 금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광산들이 세워졌고 스페인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금을 스페인으로 가져갔어요. 왕은 들여오는 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받았어요. 그래서 펠리페 2세는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이 스페인 안에 전해지자 이번에는 정복자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가난한 사람들이 금을 찾아 남아메리카로 몰려갔습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심한 고통을 당했어요. 스페인 사람들은 노예를 부리듯 그들을 광산에 몰아 넣고 일을 시켰어요. 그들은 몇 달씩 캄캄하고 축축한 광산에 갇혀 일만해야 하기도 했지요. 또, 스페인 사람들이 퍼트리 전염병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답니다. 남아메리카의 금은 스페인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지만 정작 그곳의 원주민에게 화가 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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