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세계사] 근대편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17 퀘이커 교도 윌리엄 펜이 세운 펜실베니아, 영국의 명예 혁명

뽀선생Kimppo 2022. 3. 1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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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은, 또 다른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가 그곳에 정착지를 만들었고 그곳을 펜실베이니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해군 제독 펜의 이름을 딴 것이었죠. 그가 어떻게 신대륙에 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했는지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해군 제독이 된 펜 (윌리엄 펜의 아버지)

영국에서는 크롬웰이 죽자 프랑스로 도망갔던 왕이 계승자 찰스 2세를 대려오면서 왕적 복고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때 윌리엄 펜의 아버지가 선장으로 있는 배를 타고 찰스 2세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찰스 2세는 펜의 아버지를 해군 제독의 자리에 임명했고 기사 작위를 주었습니다.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자 해군 제독 펜은 그에게 큰돈을 빌려주었어요. 해군 제독 펜은 그렇게 하면 자신은 물론, 자신의 아들도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계산했어요. 

 

퀘이커가 된 윌리엄 펜

하지만 펜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어떤 종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모임에는 '퀘이커'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을 만나는 순간 몸이 부르르 떨린다고 고백했기 때문인데요, 퀘이커란 '부르르 떠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퀘이커 교도들은 영국 국교회 예배를 참석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조용히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인간은 남녀 관계 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고 믿었어요. 사실 그 당시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리고 그 평등하다는 생각 때문에 국왕 앞에서 조차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의 행동은 반란으로 여겨졌고, 퀘이커 교도들은 체포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해군 제독 펜은 아들이 퀘이커 교도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그만두고 집으로 오게 했어요. 하지만 펜은 퀘이커의 신앙을 버릴 수 없었죠. 아버지는 격분하여 아들을 집에서 내쫓았고, 윌리엄 펜은 감옥을 들락거리며까지 퀘이커 교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북아메리카로 떠난 윌리엄 펜

윌리엄 펜은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정착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도 퀘이커 교도들과 자신들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떠나길 원했어요. 그는 찰스 2세에게 전에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돌려받아야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단, 현금이 아닌 북아메리카 땅으로 받고 싶다고 말이죠. 찰스 2세는 허락했고, 그 식민지의 이름을 해군 제독 이름을 기념해 '펜실베니아'로 부르게 했습니다. 펜은 델라웨이 강 서쪽의 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땅은 거대한 땅이었죠.

 

그는 펜실베니아에 수도를 세우고 그곳의 이름은 '필라델피아'라고 지었습니다. 이것은 '형제 사랑의 도시'라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식민지를 운영할 방식을 지침서로 썼고, 권력을 한 그룹이 독차지 않지 못하게 하게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쓴 '정부의 틀'이란 지침서는 나중에 미국의 헌법 모델이 되었어요. 

 

그는 원주민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땅들을 사용할 때는 반듯이 값을 치렀습니다. 처음에는 100명의 이주민들이 도착했지만 계속해서 이주민들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웃해 있던 메릴랜드 총독은 펜실베니아가 날로 커져가는 것을 원치 안았어요. 메릴랜드 총독은 영국 국왕에게 펜실베니아 땅 일부를 자기들 소유를 하게 해달라고 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펜도 펜실베니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떠난 펜은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펜실베니아에 돌아올 수 없었어요.

 

 

명예혁명

영국에 도착하니, 찰스 2세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곧 찰스 2세가 죽고, 그의 동생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자였죠. 제임스 2세에게 아들이 태어나자,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영국이 가톨릭 국가가 되는 것을 막고 싶어 했죠. 그들은 제임스 국왕의 딸 메리를 불러들였습니다. 메리는 오렌지 공 윌리엄 3세라는 네덜란드 귀족과 결혼한 상태였죠. 그들 부부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였습니다. 영국인들의 초청을 받은 메리 부부는 그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의회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어떤 법률도 선포하지 않겠다는 서약도 했어요. 이들 부부를 실은 배가 영국에 도착하자 제임스의 왕실 군대는 국왕을 버리고 새로운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를 환영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새로운 국왕을 앉혔기 때문이 이것을 '명예혁명'이라 부릅니다. 

 

한 편, 펜은 의심을 받고 감옥에 갇히고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15년이란 세월이 지났어요. 시간이 흐르자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되었을 때 펜은 다시 펜실베니아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북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시청 건물 꼭대기에는 지금도 윌리엄 펜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그 동상의 모자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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