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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세계사] 근대편 40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10 일본의 기독교와 선불교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불교 신자였습니다. 그러한 일본에 예수회라 불리는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다이묘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쇼군이었던 이에야스는 선교사들을 경계했어요. 상선들이 먼저 들어오고,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군대가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에야스는 기독교를 금지시키고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했습니다. 쇼군이 된 도쿠가와막부의 쇼군 이에미쓰 이에야스가 죽고 그의 아들 히데타다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되었어요. 그 역시 기독교를 금지했습니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일났어요. 히데타다는 일본에서 나가지 않는 가톨릭 신부들을 감옥에 넣기도 했어요. 히데타다는 아들 이에..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9 유럽의 30년 전쟁

오스만 투르크가 영토를 넓히며 확장하는 동안 유럽은 자기들끼리 전쟁으로 바빴습니다. 이 전쟁의 이름은 '30년 전쟁'입니다.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그의 제국을 동생인 페르디난트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나누어 물려주게 됩니다. 펠리페 2세는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물려받았고 페르디난트는 독일에 있는 카를의 소국들을 물려받고, 형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 황제가 되었습니다. 페르디난트가 죽은 후에는 아들 막시밀리안이, 막시밀리안의 아들 마티아스에게 대물림되다가 마티아스가 자식 없이 죽자 독일의 소국들은 그의 사촌인 페르디난트 2세에게 돌아갔습니다. 당시 독일은 작은 나라들이 모여서 이루어졌고 각 소국들은 강력한 군주가 다스렸는데, 군주에게는 각 나라가 가톨릭일지 프로테스탄트일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어요...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8 중동, 셀주크 투르크와 오스만 투르크

중동의 나라들은 이슬람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의 화려한 페르시아부터 현대의 터키에 이르기까지 중동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요? 사실 중동의 역사는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여러 번 주인이 바뀌기 때문이에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복잡하지만 재미있는 중동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페르시아와 이슬람 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론에게, 바빌론은 페르시아 사람들에게 정복당했습니다. 페르시아는 다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했고, 알렉산드로스가 젊은 나이에 죽자 그의 장수였던 셀레우코스가 페르시아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일부 파르티아 지역이 페르시아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왕국이 되었어요. 파르티아 왕국은 점점 더 강해지도 셀레우코스 왕국은 점점 약해졌죠. 그런데 파르티아 왕국의 왕들은 귀족과 사이가 좋..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7 버지니아의 담배 밭과 노예 제도

영국 사람들이 자리 잡은 제임스타운은 미국의 버지니아 땅이었습니다. 버지니아 땅에서는 영국인들이 바라던 금이나 그 밖의 보석은 없었지만 담배가 생산되면서 그들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담배 산업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노예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는데요, 담배 산업과 노예 제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담배 산업에 끌려 온 노예들 제임스 타운이 생긴 지 2년이 되던 해에도 정착지의 주민들의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정착지의 주민이었던 존 롤프는 스페인 담배 씨앗을 가지고 원주민들이 담배 농사는 짓는 그대로 따라서 짓기 시작했어요. 그 담배는 런던의 애연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런던에는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즐겨 피웠답니다. 담배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커지자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6 신대륙, 각자의 꿈을 찾아 새로운 땅으로

영국의 청교도들은 가톨릭의 모든 색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어 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의 국교회에 속하지 않고 자가들만의 방식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서 영국 사람들은 그들을 분리파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자신들만의 신앙과 예배 방식을 고수했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어떻게 북아메리카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분리파들을 차별한 제임스 제임스 국왕은 분리파들에게 불리한 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분리파 신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내게 하기도 하고, 교회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들은 헛간이나 마구간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죠. 사실 기회만 생긴다면 분리파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5 일본의 장군들

일본日本은 해가 떠오르는 땅이란 뜻이랍니다. 서구 세력들이 북서 항로를 찾아 나서던 그 무렵 일본 안에서는 내전이 빈번했어요. 일본에 황제는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다이묘'라 불리는 힘 있는 무사들이 일본을 가지고 서로 싸우고 있었죠. 다이묘들은 사무라이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게 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는 황제도, 다이묘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떠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파는 장사치에 불과했죠. 돈도 없고, 가문도 없고 생김새 또한 내놓을만 하지는 않았죠. 그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장군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을 통일해 자신이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자였죠.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강력한 사무라이를 그의 군대에 고용했습니다. 히데요시는 충성을 다했고 전투에서..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4 북서 항로를 찾아서

한편, 북서 항로를 찾기 위해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항로가 개척된다면 상인들은 곧장 중국과 인도 등의 나라들과 교역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가 영국의 왕위를 물려 받던 그 해,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는 사무엘 드 샹플랭을 고용해 북서 항로를 찾는 일을 맡깁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샹플랭 그는 대서양을 가로 질러 지금의 캐나다에 속하는 곳에 도착했어요. 그곳 사람들은 친절하게 그를 맞아 주었고 샹플랭 역시 그곳에 마음에 들었죠. 그곳은 프랑스 사람들의 새로운 정착지로도 손색없어 보였어요. 캐나다의 아름다운 절경에 푹 빠진 샹플랭은 프랑스로 돌아가 국왕에게 그곳의 아름다움을 설명했고, 그곳을 프랑스의 식민지로 만들자는데 동의했어요.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올..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3 제임스와 영국, 북아메리카

메리의 아들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라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신이 주신 신성한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왕의 뜻은 곧 신의 뜻이라고 것이었죠. 그는 [자유 군주국의 진정한 법]이라는 책을 써서 왕의 신성한 권리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 책에는 "국왕은 모든 영토를 지배하는 대군주이며, 그 영토 안에 사는 사람들의 주인으로 그들의 생과 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쓰여있어요. 두 왕국의 왕이 된 제임스 제임스는 20년간 스코틀랜드를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가장 가까운 친척인 제임스는 영국의 국왕이 되면서 두 왕국의 통치자가 되었어요.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 영국..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2 프로테스탄트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에게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물려주었을 때, 네덜란드에는 침묵자 빌렘이라는 귀족이 있었답니다. 그는 '오렌지 공'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프랑스의 오랑주(영어로 오렌지)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죠. 빌렘은 펠리페보다 6년 늦게 태어났어요. 펠리페가 궁정에서 살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교육을 받았습니다. 빌렘이 10대 때에 프랑스 남부 지방과 네덜란드의 어느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두 곳 모두 카를의 제국 안에 속해 있었죠. 카를과 빌렘 카를은 빌렘이 장차 강력한 귀족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를 궁정으로 데려와 교육시켰습니다. 카를은 그가 부모와 같이 프로테스탄트로 자라나 가톨릭에 적대적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빌렘은 자라 갈수..

[세계역사 이야기] 근대 1 카를 5세, 펠리페 2세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신성 로마 제국의 페르디난트 1세 세계의 많은 곳을 통치했습니다. 근대로 접어든 세계에는 펠리페 2세의 십자가 깃발괴 페르디난트의 쌍독수리 깃발로 뒤덮여 있었어요. 카를 5세 1500년대 네덜란드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그의 할아버지는 독일의 작은 나라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였고, 또 다른 할아버지는 스페인 국왕이었습니다. 그 집안에는 왕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카를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는 어린 나이에 네덜란드의 통치가가 될 수밖에 없었죠. 열여섯 살에는 스페인 통치자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번엔 스페인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열아홉 살에는 독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독일 국왕의 자리도 차지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카를은 세 나라의 국왕이 된 것에 만족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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