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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대표 선수 시티그룹

뽀선생Kimppo 2021. 11. 2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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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대표 선수는 시티그룹입니다. 씨티 그룹은 로스차일드, 록펠러, 모건 등을 합친 유대계 금융기관입니다. 1812년 창업한 시티뱅크 오브 뉴욕이 그 전신이기 때문에 10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창립 50여 년 뒤 ‘내셔널시티은행’으로 이름을 바꾸고 록펠러 가의 투자를 계속해서 받으면서 월가의 1위로 올라섰습니다. 20세기 초에는 제이피모건 상사도 대주주가 되었고요 1955년에는 내셔널시티은행과 뉴욕퍼스트내셔널은행이 합병, ‘뉴욕퍼스트내셔널 시티은행’이 되었습니다. 유대계 금융 대부호들이 은행의 대주주로 참여한 것입니다. 1976년에는 ‘시티코프은행’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시티뱅크 - 내셔널시티은행 - 뉴욕퍼스트내셔널시티은행 - 시티코프은행


1998년 트레블러스의 주도하에 합병이 진행되었습니다. 트레블러스는 증권사, 투자은행 업무를하는 제2 금융권이었어요. 이 합병이 진행되며 세계 백여 개국에 지점망을 갖고 있는 다국적 은행과 증권회사, 생명보험회사, 손해보험회사, 자산운용회사, 신용카드회사가 모두 시티그룹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샌디 웨일은 시티그룹 전체를 빨간 우산으로 상징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이 두 기업의 합병은 세계 금융사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세계적인 초대형 금융종합그룹의 탄생이기 때문이죠. 이는 은행, 증권, 보험을 총괄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것입니다. 웨일 회장의 주도 아래 소비자금유은 물론 기업금융, 증권과 보험까지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는 금융백화점을 세운 것입니다.


샌디 웨일

샌디 웨일은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 출생으로 폴란드 유대인계입니다. 명문대학인 코넬대학을 졸업하고 유대계 투자은행에 메신저보이로 취직, 고객에게 주식, 채권 등을 배달하거나 브로커들에게 투자정보를 전달해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브로커가 되고 싶어했어요. 그리고 직장을 옮겼고 27살이 되던 해에 친구들과 함께 증권투자자문회사를 열었습니다. 설립초기 두 명의 애널리스트를 뽑았는데, 그 중 한 명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아서 레빗 주니어였고, 또 한 명이 하버드 출신의 마셜 코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재들 덕분에 월가에서 좋은 평판을 받던 그의 회사는 1970년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주식시장이 폭락한 것이죠. 그는 눈여겨 보던 하이든 스톤을 인수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어요. 부도직전에 웨일의 회사보다 자산 규모가 30배 이상되는 하이드 스톤을 인수한 것이죠.

웨일은 하이드 스톤을 인수한 뒤 기업공개를 통해 자본을 끌여들여 부채를 갚았습니다.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하이드 스톤을 인수한 셈입니다. 그는 회사 이름도 하이드 스톤으로 바꾸었어요. 그는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여로 회사들을 인수했습니다. 웨일의 M&A 과정을 살펴보면 잠재력 있는 회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헐값으로 회사를 인수해서 살리는 형식이었어요. 이렇게 잠재력은 있지만 부실한 금융사들을 찾아내 인수한 뒤 이를 탄탄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사를 살린 후에 다시 비싼 값에 팔았습니다. 그는 20년 동안에 15회 이상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는데 이는 1970년대 부실 금융사들이 무더기로 쏟아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웨일은 1979년 부실 증권사를 잇달아 인수해 ‘시어선 륍 로드’라는 증권사를 만들었는데, 시어선은 빠르게 성장해 밀릴린치에 이어 미국 2위의 증권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급성장한 웨일의 기업은 메릴린치를 따라잡기 위해 1981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와 합병을 결정했어요. 웨일은 시어선을 아멕스에 매각하고 이 회사의 증권사업 부문을 맡았습니다. 웨일이 이어선을 아멕스에 매각한 이유는 증권회사만이 아니라 다른 금융서비스와 결합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멕스는 당시 미국 최대의 신용카드 회사였어요. 그는 증권과 신용카드업을 결합, 양쪽 고객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교차 판매하고자 했습니다.


웨일, 아멕스를 떠나다

하지만 아멕스는 교차판매에 소극적이었고, 생각했던 것만큼 합병의 시너지도 미미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워런 버핏의 지원을 받아 아멕스의 펀드보험 사업 부문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아멕스의 이사회는 웨일을 경계해 제안을 거절했고 웨일은 아멕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웨일은 제이미 다이먼과 함께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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