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의 건륭제의 말기에는 자신이 아끼던 신하 화신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내어주었습니다. 권력을 손에 준 화신은 백성들에게 뇌물을 받고, 관리들을 억압했어요. 건륭제는 60년의 치세를 마치고, 아들 옹염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어요. 옹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연호를 가경이라 지었습니다. 연호는 왕이 통치하는 동안 연대에 붙이는 칭호랍니다.
가경제와 임칙서, 아편을 금지하다
가경제는 견륭제가 세상을 떠나자 화신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사랑했던 신하를 처형할 수 없어 자결할 것을 명령했어요. 그렇게 화신은 죽었지만, 중국의 재정은 회복되지 않았어요. 화신 외에도 부패한 중국의 관리들은 자신의 배를 불리느라 뇌물을 받고, 과도한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가경제는 그런 문화를 청산하려 노력했지만 거대한 조직과 이미 퍼질 때로 퍼져있는 부패의 그림자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죠.
가경제가 세상을 떠나고 도광제가 국고가 텅 빈 중국의 통치자로 등극했습니다. 텅 빈 국고와 더불어 중국의 큰 문제는 아편이었어요. 아편 중독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고, 아편 밀매가 성행했습니다. 이렇게 밀매가 성행하면서 중국의 은화는 외국 무역상들에게 흘러 들어갔죠. 도광제는 임칙서라는 신하에게 광저우의 아편 밀매 업자들을 찾아 체포하고 아편 무역을 막으라 명령했어요.
임칙서는 광저우 항에서 중국 아편 상인들을 체포했어요. 그리고 영국인들에게 사람을 보내, 배에 싣고 있는 아편으로 내놓고 앞으론 중국에 아편을 팔면 처형하겠다고 알렸습니다. 영국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싣고 있던 아편을 내어주었어요. 몰수된 아편은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모두 패기 되었죠.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영국은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중국의 모든 항구를 강제로 열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중국은 군함도 없었고, 해군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영국은 강력한 해군을 소유한 나라였어요. 영국의 해군이 광저우를 공격하면서 ‘아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중국은 항복했고 난징에서 만나 ‘난징 조약’을 맺게 됩니다. 물론, 영국이 원하는 대로, 중국에겐 불리한 조약이었죠.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이 조약을 ‘불평등 조약’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임칙서가 패기 한 아편 값을 다시 치러야 했습니다.
중국은 영국이 원하는 항구를 더 열어주어야 했고, 홍콩 섬은 영국에게 통째로 주어야 했어요. 거기다 미국, 프랑스와도 똑같은 조약을 맺어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