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어느 해변에 상륙한 두 명의 영국 상인은 줄주족의 샤카왕을 만났고 그는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 생각해서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땅을 나누어 주었지요. 영국 상인들은 그곳에 무역항을 건설했고 이름을 ‘더반’이라고 지었어요.
아프리카 줄루족의 샤카
샤카의 어머니 난디는 한 부족의 공주였고 줄루족 추장인 센장가코나와 결혼했어요. 그런데 남편의 가족은 난디가 아이를 낳을 무렵 그녀에 대해서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너무 가까운 종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 그들의 관습을 깼다는 것이었어요. 난디는 샤카를 낳았지만 더 이상 남편과 함께 살 수 없었죠. 그녀는 샤카를 데리고 친정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죠. 난디와 샤카는 음테트와라는 다른 왕국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샤카의 아버지 센장가코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음테트의 왕은 샤카를 보내 그 아버지의 왕국을 정복하게 했습니다. 샤카는 줄루족 마을을 정복했고, 샤카는 권력을 쥐게 되었죠.
샤카는 줄루족에 군대를 훈련시켰습니다. 한 번 던지면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창을 버리고 긴 칼을 들고 싸우도록 훈련했어요. 그리고 맨발로 어디든지 뛰어다닐 수 있도록 훈련했어요. 이렇게 잘 훈련된 샤카의 군대는 어머니의 부족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군대를 돌려 음테트와 왕국으로 가서 왕을 죽였어요. 샤카는 남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할 야망을 가지고 있었죠. 샤카는 10년 동안 아프리카를 공포에 몰아넣었죠. 그 시기를 아프리카 사람들은 음페카네라고 부르는데요, 재난의 시기란 뜻이랍니다. 수많은 마을들은 파괴되었고 부족들은 흩어지고 말았죠. 재난의 시기에 아프리카의 부족들은 도미도같이 쓰러졌어요. 10년이란 기간 동안 200만 명의 사람들이 샤카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긴 전쟁 속에서 샤카의 군인들도 마침내 샤카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샤카는 이복형제의 손에 살해당했죠.
보어인과 영국인 손에 넘어간 아프리카
그렇게 샤카를 죽이고 왕의 자리에 그의 이복동생 딩가네가 앉게 되었어요.
아프리카 남쪽의 케이프 식민지에는 유럽 사람들의 정착지가 있었죠. 네덜란드 사람들이 지은 무역 기지였는데, 동양으로 가는 네덜란드 배들은 그곳에서 식량과 물을 보충하곤 했어요. 그곳에 네덜란드 총독도 세우고, 요새와 농장도 지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많은 네덜란드 인들이 그곳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들의 농장은 점점 더 북쪽으로 확장해 갔습니다. 그 네덜란드 사람들을 보어 인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네덜란드어로 농부라는 뜻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케이프 식민지를 늘 욕심냈어요. 영국은 케이프 식민지를 빼앗았다 다시 빼앗기고, 다시 빼앗았다 빼앗겼지만 결국 케이프 식민지를 완전히 빼앗았어요. 그리고 영국인 총독이 그곳을 다리게 했고, 곧 영국 이주민들이 몰려왔습니다.
보어인들은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점점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딩가네의 영토에 도착했고 그 영토를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로 결정합니다. 딩가네는 그들의 말과 총 때문에 당장에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보어인을 모두 죽여버리라고 명령을 했죠. 하지만 보어인들이 선수를 쳐, 먼저 딩가네의 줄루족을 공격했습니다. 몇 차례의 접전 끝에 결국 패배한 딩가네의 줄주 족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보어 인들은 예전에 두 명의 영국 상인이 건설했던 무역 항 더반 일대에 정착했어요. 그리고 그곳을 나탈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4년 후 영국은 이곳 마저도 빼앗았습니다. 보어인들은 더 북쪽으로 올라갔어요. 그들은 두 개의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오렌지 자유 주와 트란스발 공화국이 그것입니다.